평화+통일 Vol 1962023.02.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외교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상대방 선의 에 의한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가짜 평화”라며 압도적인 전력 강화를 주문했다. (대통령실 제공)

특집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정책 방향과 과제

군사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화는 열린 자세로

윤석열 정부는 헌법 제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진하여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구현하는 것을 통일·대북정책의 비전으로 설정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과 민주평통의 역할을 제안한다.

북한은 2022년 한 해 동안 그동안 발사했던 전체 미사일의 4분의 1 수준인 70여 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2023년 첫날에도 미사일을 쏘았다. 동시에 북한 핵개발과 무력시위에 대응한 한미의 확장억제력 행사를 빌미 삼아 핵무기의 기하급수적 증산과 남한을 과녁으로 하는 전술핵무기 개발을 공언하고 나섰다. 이런 행태로 볼 때 북한은 앞으로도 국제사회를 과도하게 경계하고 힘의 과시를 위해 스스로를 긴장상태로 몰고 가면서 어려움을 자초하는 자학적 행태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북한의 모습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분단 78년의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치다가도 가끔씩 화창한 날씨가 나타나곤 했다. 북한은 화창한 날씨 중에도 핵무기를 개발했고, 다양한 형태의 무력 도발과 위협 행위를 자행했다. 우리는 이러한 북한의 실체를 부정하고 북한과 단절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운명적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기에 북한 을 자유와 인권, 행복을 공유하면서 번영과 발전을 이루어나갈 협력적 동반자로 변화시켜야만 한다.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 비전
윤석열 정부는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북한에 대응하고 있다. 첫째,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은 열어둔다. 둘째,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실행한다. 셋째, 북한이 붕괴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한반도의 공동 번영을 원한다. 넷째, 북한을 달랠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북한과의 도발이나 갈등을 일시적으로 피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다섯째, 인도적 지원은 정치·군사적 고려 없이 언제든지 열어 놓는다. 요약하면 북한의 군사 도발에는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하되, 북한의 비핵화 등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남북대화와 협력을 상황에 맞게 추진하는 다양한 접근을 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 비전은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구현하는 것으로, 이전 정부가 추구했던 ‘평화 번영의 한반도’ 앞에 ‘비핵’을 내세운게 특징이다. ‘비핵화’에 매우 부정적인 북한의 태도를 언급하며, 비현실적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2018년과 2019년의 경험을 돌아보자. 남북 최고지도자가 백두산 천지에서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겠다는 상징적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지 못하면 남북관계 발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 앞에 ‘비핵’을 두는 것은 불가피하고 현실적인 입장이라고 하겠다.

2022년 12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북한인권 국제대화’ 행사장에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앞줄 왼쪽 다섯 번째)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앞줄 왼쪽 여섯 번째)을 비롯한 귀빈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도발적인 행태에 단호히 대응하면서도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의미 있는 제안을 하는 등 ‘균형 잡힌 통일·대북정책’을 추진하고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료 및 방역 지원, ‘담대한 구상’,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한 당국회담 제의 등이 그것이다. 이중 ‘담대한 구상’은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 구상으로,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하는 정치·군사 및 경제적 지원과 협력의 구체적 내용 을 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이 ‘확고한 비핵화의지’, 즉 비핵화 대화 참여 의지만 보여도 그들이 원하는 체제 안전과 경제 지원 문제를 협의하고 추진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북한 비핵화 전제조건 중 최저 수준이다. 이러한 조건을 비현실적이라고 한다면, 이는 곧 북한 핵을 인정하자는 것으로 비핵국가인 우리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까지 북한은 윤석열 정부 제안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압살하려는 미국 편에 동조한 ‘명백한 적’이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이러 한 북한의 ‘강대강’ 대결 자세는 한미 양국의 단호한 대응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경제적 어려움만 가중될 것이다.
통일·대북정책 과제와 민주평통의 역할
분단 70여 년의 남북관계는 한국 및 국제사회의 정책보다는 북한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져왔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해나가야 한다. 북한 행태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수동성’과 관계 개선에 목을 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실현하고, 평화적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이루려면 안정적이고 일관된 통일·대북정책을 추진하는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첫째, 우리 사회 내부의 통일·대북정책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고, 북한 변화를 위한 노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도발 행태에 대비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며, 북한 비핵화와 개방 등 북한이 변화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데 우리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일 공감대 강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분야에 서 지역 및 사회 각계에서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약이 기대된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할 일은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국제사회의 관심과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서독이 독일 통일을 위해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확보해냈듯 우리도 한반도 분단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미·중·러의 협력을 확보해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간 갈등으로 인해 북한핵무기 등 한반도 문제가 미·중·러 등 주요 국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게 현실이다. 한·미·일과 북·중·러 간 신냉전구도 형성도 우려되는 사안이다. 그동안 북한의 무력도발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미·중·러 간 의견 차이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핵문제는 ‘핵 확산금지조약(NPT)’ 핵심 국가인 미·중·러가 협력할수 있는 사안이다. 또 한반도의 번영과 풍요, 경제적 역량 증대는 미·중·러의 번영에도 필요한 요소다. 이러한 차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통일공공외교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해외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은 주재국 정부와 단체 및 여론 선도층을 대상으로 민간 차원에서 통일외교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북한의 변화를 직접 유도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행동이다. 북한이 변화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북한이 변화하도록 우리가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Deterrence)하면서, 북한 스스로 잘못된 목표를 단념(Dissuasion)하도록 유도하고, 남북 간 문제는 대화(Dialogue)를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게 중요하다. 북한과의 대화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자유, 민주, 인권 등 보편적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북한과의 대화에 연연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절제되고 기본 가치에 충실한, 소위‘원칙화된 협상’ 자세로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고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현안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민주평통 제20기 해외지역회의에서 해외 자문위원들이 각 지역협의회가 추진한 통일공공외교 활동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의 상호보완적 역할 분담
역대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이 평화 공존하고 상호 번영하여 궁극적인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이러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북한을 남북관계라는 ‘좁고 특수한 틀’보다는 자유와 민주, 인권 등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틀’에서 다루면서, ‘원칙과 상호주의’를 강조하는 게 특징이다.

독일 통일은 서독 정부의 동방정책과 치밀한 통일외교, 그리고 분단 이후 중단 없이 이뤄진 민간 교류가 가져온 결과였다. 동서독 주민의 통일에 대한 희망과 실천적 행동이 함께 작용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통일 사례에서 보듯 ‘비핵과 평화·번영의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독점적 자세’에서 벗어나, 정부와 민간이 상호보완적 역할 분담을 하는 게 필요하다. 당국 간 관계가 경색돼 있더라도 민간 차원에서는 소통과 협력을 이어가, 남북 주민이 함께 소소하게나마 인간적인 행복을 공동으로 향유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인간다운 삶을 경험한 북한 주민들은 동독 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 당국의 경직되고 폐쇄적인 정책을 유연하고 개방된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통일 여정은 당국과 민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민주평통 국내 및 해외 자문위원들의 시대적 소명은 이러한 통일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김 형 석 남북사회통합연구원 이사장, 前 통일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