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62023.02.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타워에서 북쪽을 바라보는 어린이의 모습.

걸어서 155마일

① 강원도 고성

DMZ 머리맡에 서서
통일 한반도를 꿈꾸다

2023년은 6·25 정전협정 70주년이다. 『평화+통일』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휴전선 인근에 남은 6·25전쟁 흔적을 탐방하면서 분단 현실을 되짚고 평화통일 비전을 그려보는 기획을 시작한다. 통일을 향한 여정은 군사분계선 동쪽 끝인 강원도 고성군에서 시작해 서쪽 끝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막을 내릴 예정이다.

강원도 고성군 오봉리에는 국내 유일 북방식 전통마을로 불리는 왕곡마을이 있다. 두백산·공모산·순방산·제공산·호근산 등 다섯 개 봉우리가 둘러싼 계곡 형태라 마을 이름에 ‘곡’이 붙었다. 가옥 대부분이 19세기를 전후해 세워졌는데, 그중 상당수가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2000년 1월 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고려 말인 14세기 무렵 강릉 함씨, 강릉 최씨, 용궁 김씨가 함께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형성했다. 지금도 함씨와 최씨를 중심으로 40여 가구가 모여 산다.

고성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의 분단군(郡)이다. 사실 일반인에게 ‘고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통일전망타워일 것이다. DMZ 박물관도 고성군에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제치고 왕곡마을부터 둘러본 이유는 6·25전쟁 당시 고성 촌락 중 유일하게 전화(戰禍)를 입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 체결 후 7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왕곡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증을 안고 길을 나선다.

‘길지 중에 길지’ 전쟁도 피해간 왕곡마을
고성에 이르는 길은 굽이굽이 산이다. 차를 타고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미시령을 따라 오봉리에 이르니 오음산(926m), 두백산(225m) 등 여러 산과 둘레 6.5km에 달하는 송지호의 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왕곡천 옆으로 난 큰길을 따라 와가(瓦家)와 초가집이 드문드문 늘어선 풍경이 소박하다. ‘왕곡마을 보존회’(보존회) 사무실에 도착하자 김영숙 사무장과 조효선 문화해설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보존회 사무실 또한 전통가옥이다. 거실에 걸린 왕곡마을 사계절 풍경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온다. 조효선 문화해설사는 이 마을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600년 된 북방식 한옥과 초가집 군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왕곡마을이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이 질문의 답을 얻으려면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6·25전쟁 중 고성 부근에서 남과 북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때, 지금의 국도 7호선 인근 취락은 잦은 폭격에 파괴되고 말았다. 그런데 불과 1km 남짓 떨어진 왕곡마을은 화를 피했다. 미군이 함포사격을 가할 때조차 이곳엔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백산 8분 능선에 파편이 박혔을 뿐이다. 왕곡마을 한가운데 폭탄이 세 발 떨어진 적 있는데, 이 또한 모두 불발돼 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김영숙 사무장은 “이러한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왕곡마을을 ‘병화불입지(兵火不立地·전쟁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곳)’라고 부릅니다. 풍수지리학자가 국내 10대 명당 중 하나로 꼽은 곳이죠.”라고 설명했다.

휴전선 북쪽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통일전망타워 전경

DMZ 박물관 야외에 설치된 조형물

한때 평화의 길목 꿈꾸던 최동북단 명파마을
그러나 이런 ‘길지 중 길지’에도 전쟁의 상흔은 남아 있다. 마을 어디를 가든 전쟁에 얽힌 사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조 문화해설사는 한 어르신에게 기자를 안내했다. 1939년 고성에서 태어나 줄곧 왕곡마을을 지켜온 함병식 할아버지다. 힘 있게 울리는 목소리와 강단 있는 풍채가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하는 할아버지는 열두 살 때 6·25전쟁을 겪었다.

“전쟁이 터졌다 해서 안 놀랐습니까. 비행기들이 굉음을 내면서 하늘을 가득 뒤덮데요. 그거 구경하겠다고 산꼭대기로 올라가니 배들이 동해를 벌써 새까맣게 뒤덮었더라고…. 피난 가래서 일단 덕포 바닷가 바위 뒤편으로 몸을 숨겼어요. 나중엔 양양 거쳐 삼척으로 내려왔지. 덕포에서 못 빠져나온 몇몇 주민은 훗날 이북 사람이 됐어요. 한국군이 고성을 수복했다고 해 우리는 돛단배 타고 마을로 돌아왔고요. 군인들이 마루 나무를 뜯어다 땔감으로 사용한 것 말고는 집이 멀쩡하데요.”

대화를 마치고 일어서는 길, 할아버지의 한마디가 다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요즘 사람들이 전쟁의 참혹성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해요.”

무슨 말씀인지 여쭙자 여든 넘은 노인 입에서 ‘무섭다’는 말이 나왔다.

“남과 북이 분단되고 벌써 70년이 흘렀잖아요. 그런데 나는 여태껏 그날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전쟁 중에 배곯던 일도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난다고. 난 지금도 전쟁이 무서워요. 아주 무서워.”

다시 차에 오른다. 한참 산길을 달려 민간인통제선(민통선)에서 가장 가까운 최북단 명파마을에 다다랐다. 현재 70여 가구,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곳. 마을 어귀에 이르자 먹거리촌이 눈에 띈다. 도로변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식당 간판 10여 개가 마치 도미노 같다. 식당 대부분은 오래전 문을 닫은 모양인지 인적이 없고 적막감만 감돈다. 먼지 쌓인 가게들 사이에서 영업 중인 냉면식당과 슈퍼마켓이 외딴섬처럼 느껴진다. 도로변 슈퍼 사장은 그간의 사정을 풀어놓았다.

“명파마을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민간인이 닿을 수 있는 최동북단 마을입니다. 북한 도발이 있을 때마다 긴장감이 돌지만, 한때 ‘이제는 달라지겠지’ 기대를 한 적도 있어요. 2003년인가,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됐을 때죠. 북한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왕복 2차선 도로가 관광버스로 가득 찰 정도였거든요. 그때는 ‘이제 우리 마을이 평화의 길목으로 거듭나겠구나’ 기대했단 말입니다.”

남과 북이 함께 완성한 강원도 고성군 합축교. 2. 6·25전쟁의 참상을 사진, 영상, 유물로 현실감 있게 체험할 수 있는 6·25전쟁체험전시관
남과 북이 함께 만든 다리 합축교
그러나 2008년 7월, 남한 관광객 박왕자 씨가 금강산에서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숨진 일이 발생한 후 잠시의 호황은 막을 내렸다. 그 사건 여파로 금강산 관광이 15년째 중단되면서 명파마을 먹거리촌을 형성했던 식당 대부분이 폐점 절차를 밟았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전쟁을 겪었어요. 전방 지역에 사니까 안보의 중요성도 잘 알고요. 그런데도 수십 년째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남북관계를 보고 있으면 답답해요.”

사장의 소망은 죽기 전 철책선이 걷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많은 분이 통일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나까지 한스럽게 눈을 감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말했다.

1월인데도 이례적으로 포근한 날, 발걸음을 돌려 민통선 탐방에 나섰다. 검문소에 도착하기 전, 통일의 길을 상징하는 합축교를 지난다. 합축교는 남과 북이 함께 완성한 교량으로,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다. 길이 214m, 폭 6m, 높이 5m로 교각은 17개에 달한다. 본래 이름은 북천교였는데, 남북한이 각각 다리 8개와 9개 공사를 맡아 ‘함께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합축교라는 이름을 다시 붙였다.

다리도 볼 겸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처음엔 남한이 건설한 부분은 받침대와 난간이 철재였고 북한은 그 부분을 시멘트로 만들었다는데, 그새 다리가 정비돼 이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교각과 받침대를 보니 육안으로도 남북한 건축 방식 차이가 드러났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던 노인이 기자에게 “그거 문화재인 거 아능교?” 하고 말을 건넨다. 답할 겨를도 주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뒷모습이 정겹다.

민통선을 넘어 통일전망타워로 향했다. 평일 대낮임에도 가족 단위 관광객이 북적인다. 전망타워에 오르자 오른쪽으로 푸른 바다와 백사장이 펼쳐지고 멀리 해금강이 보인다. 왼쪽엔 철책선이 뻗어 있다. 그 너머로 월비산이 보인다. 때마침 한 아이가 아빠에게 북쪽 도로를 가리키면서 “저기 넘으면 북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묻는다. 아이 아빠는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라고 답한다. 부자의 대화를 듣다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건넨 답은 지금 고성에서 전쟁의 상처를 품은 채 통일을 염원하고 있는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정전협정 체결 후 70년, 절경과 철책의 이상하고 묘한 조화가 전쟁과 평화의 공존을 상징하고 있다.

당포함 전몰장병 충혼탑
1967년 1월 19일 오후 1시 30분경, 동해안 어로저지선 부근에서 우리 어선 250여 척의 보호 임무를 수행하던 당포함이 북한 육상포대의 집중포격을 받아 침몰했다. 당시 전사자 39명이 발생했다. 이들의 영혼을 추모하고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1970년 5월 10일 당포함 전몰장병 충혼탑을 건립했다.

DMZ 박물관
냉전의 유산인 DMZ를 주제로 건립한 박물관이다. 2001년 착공해 2009년 개관했다. 6·25전쟁 전후 모습과 정전협정으로 생긴 군사분계선, DMZ가 갖는 역사적 의미, 독특한 생태환경 등을 전시물과 영상으로 재구성해 선보인다. 대북선전 방송장비와 미국 병사 편지, 정전협정서 등 유물도 관람할 수 있다.

당포함 전몰장병 충혼탑
동해안 최대 자연호수인 화진포는 주변 경관이 빼어나 예로부터 별장이 많았다. 현재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되는 이승만별장과 이기붕별장은 화진포의 아름다운 풍경과 현대사의 뒷모습을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원통형 2층 석조건물인 김일성별장(사진)에서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