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62023.02.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2년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포커스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 본 2023년 북한 정세

대내외적 어려움 속 강해진 호전성,
전년 상회하는 수준 도발 감행할 것

북한은 2022년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노동당 중앙위원회(중앙위) 제8기 제6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그 결과를 2023년 1월 1일 노동신문으로 공개했다. 이번 중앙위 전원 회의 결과를 통해 2023년 북한 정세를 전망해본다.

북한의 신년사는 여러 측면에서 북한 지도부의 상황인식과 정책 방향을 알아낼 수 있는 주요한 자료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신년사가 담고 있는 직접적 내용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신년사가 보여주는 여러 부차적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북한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없는 여러 사정을 알아낼 수도 있다.

북한이 70년 이상 발표해온 신년사는 해마다 또는 시기별로 주제 구성과 비중, 발표 형식, 발표 분량 등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70건 이상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크고 작은 변화가 왜 발생하는지 추론하면서 비교분석해볼 수 있다. 그러면 경우에 따라 해당 신년사가 직접적으로 내세우는 공개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아낼 수도 있다. 아래에서는 노동당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과에 관한 1월 1일 노동신문 보도를 편의상 신년사라고 표기한다.
4년째 중단된 김정은 육성 신년사
2023년도 신년사에서 구체적 내용과 더불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최고지도자가 직접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 이번 신년사 분량이 전년에 비해 줄어들고 내용도 간소화됐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북한의 지도자 또는 북한 정권이 대내외적으로 위축돼 있을 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두 특징이 김정일 집권 시대(1995~2011)의 신년사(공동사설) 특징과 일치한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이 시기 김정일은 과거 김일성이 육성으로 직접 발표했던 신년사를 3대신문(당보/군보/청년보) 공동사설로 대체했다. 이 공동사설 신년사는 내용으로 때 북한판 상투적 논리를 반복할 뿐이었고, 전체 분량도 다른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다.

북한 정권 위축기 신년사의 특징이 2023년에 재등장했다. 2012년 4월 공식 집권한 김정은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할아버지 김일성이 하던 대로 육성 신년사를 했다. 그러나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째 육성 신년사를 중단하고, 연말에 개최하는 당 중앙위전원회의 결과 보고에 관한 1월 1일 노동신문 보도로 대체하고 있다.

분량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한 전문가 칼럼에 따르면, 2022년 말 개최된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과 보고 관련 노동신문 보도 분량은 1만 282자로, 이는 2021년 말 열렸던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결과 보고(1만 8,738자)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많이 줄어든 부분은 경제 분야 성과 및 정책 방향에 대한 내용이다.

2023년 신년사의 경우, 격앙된 어조로 군비 증강과 대남 적대시 협박 정책에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할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내용 또한 북한의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다음 해인 2001년, 그리고 북한이 스스로 보기에 ‘힘의 우위’에서 대남·대미 협상을 개시하고 ‘성공적’으로 전개 중이던 2018년도와 2019년도에는 지 금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시기의 신년사에는 북한의 대외·대남 정책 성과에 대한 극찬이 담겨 있다. 당시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호기롭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설교조·훈계조로 다양한 내용을 요구했었다. 지금의 어투와는 확연히 다르다.

2023년도 북한 신년사에서 구체적 내용과 더불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최고지도자가 직접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 이번 신년사 분량이 전년에 비해 줄어들고 내용도 간소화됐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북한의 지도자 또는 북한 정권이 대내외적으로 위축돼 있을 때 나타난다.
북한 정권이 대내외적으로 위축되던 시기에 전형적으로 등장했던 두 가지 특징이 2023년도 신년사에 등장하는 배경은 다음과 같이 유추해볼 수 있다. 김정은이 육성 신년사 발표를 중단한 2020년은 2019년 2월 미북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첫 번째로 맞이하는신년사 행사 기회였다. 그때 북한은 그간의 육성 신년사 대신, 2019년 연말 개최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과를 새해 1월 1일 자 노동신문에 보도하면서 신년사를 갈음했다. 역사적으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는 매우 중요한 회의였다. 여기서 북한은 하노이 회담 실패를 계기 삼아 장기 국가전략을 ‘새로운 길’로 재정비했고, 그 정책 노선의 근간을 2021년 초 제8차 당대회에서 재확인했으며, 이후 사소한 수정보완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미국과의 ‘장기대결전’ 및 ‘정면돌파’의 전략기조를 설정하고, 구체적으로 핵·미사일 군비 증강, 대남 적대시 및 차폐 정책, 그리고 경제 및 사회 통제의 현저한 강화를 추진했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철교인 조중우의교(中朝友誼橋). 북중 교역의 주요 통로 중 하나인 이 철교 통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1년 이상 중단되면서 북한은 물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AP Photo=뉴시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채택한 ‘새로운 길’ 전략의 위기
문제는 2019년 말 북한이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통해 ‘새로운 길’ 전략을 선택하자마자, 예기치 않은 중대한 상황 변화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2020년 초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돌발적으로 등장한 것.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국면은 북한의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전략 노선에 우호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우호적인 측면부터 보면, 코로나19는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전략노선으로 설정했던 경제와 사회에 대한 통제 그리고 대남 차폐 정책을 적은 비용으로도 철저히 관철할 수 있는 호조건을 만들어줬다. 부정적인 측면은, 코로나19 유행 여파로 대중 국경 및 무역이 봉쇄되고 내부 이동통제 정책이 시행되면서 북한경제에 추가적으로 상당한 장애를 초래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국제제재는 2017년부터 현저히 강화됐는데, 2020년 초부터 본격화한 코로나19 사태는 북한의 대중 무역을 거의 중단 수준으로 축소시켰다.

2021년 초 북한은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하면서 ‘국방력 강화 5개년 정책’을 최상위 정책으로 설정했다. 앞에서 언급한 이유로 북한 경제가 이미 상당한 어려움에 처했고, 향후에도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을 예견하면서 세운 정책이었을 것이다. 즉 북한은 경제악화에도 불구하고 또는 경제 악화를 감수하면서 핵 및 미사일을 통한 국방력 강화를 강행하기로 결정한것이다.

예견한 대로 북한 경제 상황은 2021년과 2022년을 지나며 더욱 악화됐지만, 그럼에도 북한은 2022년과 2023년 신년사를 통해 여전히 국방력 강화를 최상위 정책 목표로 설정했다. 북한은 2022년 1월 한동안 자제했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2022년 한 해 동안만 대륙간탄도미사일(8회)을 포함해 탄도미사일을 31회, 63발 발사했다. 김정은은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을 직접 지도(9.25.~10.9.)했다. 또한 2022년 10~12월 동안 15회에 걸쳐 ‘9.19 남북군사합의’를 위반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가
끝난 뒤 당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궐기모임이 각 부문·단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문화성 궐기모임.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선전평양고무공장에 설치된 선전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정을 관철하자는 내용이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2023년 신년사는 북한이 올해 전년 수준을 상회하는 도발을 감행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렇지만 2023년도 신년사에 나타난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특징, 즉 최고지도자의 육성 신년사 생략과 분량 감소는 북한이 당면한 딜레마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특히 경제와 대내정책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과거 북한은 해마다 신년사를 통해 새해 경제 정책을 전망하고 분야별 정책 방향을 장황히 언급하고 경제관리 방침도 하달했다. 올해는 이 분야에 대한 언급이 이례적으로 간소하다. 특히 경제관리 방침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올해 정책 방향 보도에서 경제관리 방침 외에 아예 언급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 대내정치 관련 정책 방침이다. 북한은 2019년 말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이래로 꾸준히 간부 부패 문제,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문제, (반동문화사상배격법 등 관련) 대남 차폐 정책 등을 꾸준히 언급해왔다. 그런데 올해 신년사에서는 ‘당 건설 5대 방향(정치건설, 조직건설, 사상건 설, 규율건설, 작풍건설)’만을 앞세우고 있다.

2023년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여러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북한의 대외·대남 호전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올해 신년사는 북한의 공세적인 정책 노선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주목할 것은 북한이 호전적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감수해야 하는 비용은 현저히 상승할 것이라는 것이다. 첫째, 내부 경제 악화가 초래하는 정치적 부담이 증가할 것이다. 둘째,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호전적 정책 추진에서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현저히 높여줄 것이다. 셋째, 북한 내부 경제의 전반적 악화는 국방력 강화 추진에 물리적 장애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에 악조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북중 간에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전략적 이익의 일치와 협력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 형 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