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창
북한의 설 풍경
차례 지내고 세배,
김일성 부자 동상에 꽃 바쳐
음력설은 추석과 더불어 우리의 대표적인 민속 명절이다. 음력설은 남북한에서 모두 설 또는 구정으로 불리며, 이날을 전후로 사나흘이 공휴일이어서 모두가 기다리는 때이기도 하다.
남한에선 설이 되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가족들, 친척들이 모여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새해의 행복을 기원한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께 세배를 하고 맑은 떡국을 먹으며 덕담을 나눈다. 그런가 하면 가족, 연인, 친구끼리 따뜻한 지역으로 여행을 가기도 한다.
올해 설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꽁꽁 막혀 있던 하늘길도 풀린지라 인천공항은 일찌감치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설 전날부터 설 당일에 이르기까지 온라인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인사가 오가고 택배업체는 4주 전부터 비상이 걸렸다. 어떻게 하면 설 연휴를 알차게 보낼지 한두 달 전부터 일정을 조율하고 약속을 잡는 모습은 여느 설과 다르지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지난해 2월 2일 방송한 ‘설명절의 하루’ 프로그램 화면 캡처.
경제적 여유 없어 친척 모이기 어려워
북한에서는 민속 명절인 음력설에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꽃다발을 바치고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명절 음식을 나누며 다양한 민속놀이도 즐긴다. 하지만 남한과 같이 가족끼리 모여 앉거나 해외로 나갈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의 경우는 친척집에 오가기도 하지만, 평양이며 지방으로 흩어져 있는 친척들이 설이라고 모두 모이기는 어렵다. 코로나19 유행은 친척 간 교류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나마 스마트폰이 있어 친척들에게 영상으로 인사하거나 문자로 설 명절 카드를 보내기도 한다. 꽃다발이나 축하장(혹은 연하장)을 들고 직접 찾아가 인사하고, 길에서 마주하는 이웃에게 인사하는 풍습은 국가적으로 장려되는 대표적인 설 명절 문화다.
북한에서 설을 보내는 풍경은 다양하다. 설날 아침 일찍 어린 자녀에게 설빔을 입히고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꽃다발을 바친 뒤 여기저기 둘러보기도 한다. 가족과 한복(조선옷)을 맞춰 입고 차례를 지내고, 어른에게는 세배를 하며, 떡국이나 만둣국을 먹는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찰떡, 송편, 설기, 절편과 같은 떡 종류와 만두, 녹두지짐, 불고기, 구이, 식혜는 대표적인 북한의 설음식이다. 면 요리도 인기가 있는데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전분(농마) 국수가 명절 상에 빠지지 않는다.
평양의 경우 설날 김일성광장이나 야외 빙상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이 화려함과 볼거리를 선사한다. 하지만 겨울의 한중간 1월이다. 추운 날씨에 연날리기나 팽이치기도 잠깐이다. 중앙동물원을 가면 야외에 동물도 많이 없다. 그나마 실내 곱등어관(돌고래 수족관) 관람이 볼거리다.
아무래도 바깥 활동보다는 집 안에서의 휴식이 제일 좋다. 북한의 몇 개 안 되는 TV 채널에서는 명절 분위기를 한껏 띄우며 수령의 은혜를 기리고 당의 사랑을 노래한다. 설 명절 관련 풍습과 민속놀이 관련 프로그램도 내보낸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의 설맞이 공연이 볼 만하다.
설날이나 다음 날 연휴를 이용해 직장인은 간부들 집을 찾아 술잔을 기울이며 앞으로의 한 해를 부탁한다. 학생들은 스승을 찾아 설 인사를 나누고 함께 온 친구들과 떡을 나누어 먹기도 하며, 일부는 밖에 나가 스케이트를 타거나 오락장을 들락거리기도 한다. 직장 동료들이나 동네 이웃끼리 한번 펼쳐진 술자리는 술이 다 떨어져야 끝난다고 한다.
설 명절 음식준비와 손님치레로 지쳤던 주부들은 다음 날 오후부터 저녁 늦게까지 반장 집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에서 윷놀이, 카드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렇게 음력설은 여유를 즐기며 체력을 충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명절이 된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지난해 2월 2일 방송한 ‘설명절의 하루’ 프로그램 화면 캡처.
1989년 김정일에 의해 음력설 부활
오래전부터 북한은 음력설보다 신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음력설은 과거 김일성 시대에는 봉건잔재의 하나로 취급됐으나, 김정일에 의해 1989년 부활됐고 2003년부터 연휴가 도입됐다.
사실 북한 사람들은 신년에 매우 바쁘다. 특히 김정은이 2020년부터 신년사를 당대회나 전원회의 결과로 갈음하면서, 주민들은 전원회의 내용을 학습하고 결의대회에 참석하느라 분주해졌다. 설 명절이 지나면 바로 시작되는 2월 16일(김정일 생일) 행사 준비로 일터에서, 동에서 얼마나 들볶일지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 중간에 있는 음력설이 반가울 것이다. 잠시나마 진정한 여유를, 웃음을, 휴식을 되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중국과 마주한 북한의 국경 지역에서는 음력설부터 보름 이상 이어지는 춘절 축제를 구경하기도 한다. 어른들은 칠흑 같은 밤 액운을 쫓는다며 그 많은 폭죽을 터뜨리는 중국을 보면서 과거 못살던 중국을 회고하기도 한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 시골은 저렇게 발전했는데, 북한은 왜 그대로인지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 시련이 언제 끝날지 생각하고, 올해는 건강하게 우리 가족이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올해도 많은 북한 주민은 짧은 연휴를 탓했을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지난해 2월 2일 방송한 ‘설명절의 하루’ 프로그램 화면 캡처.
엄 현 숙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