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82024.3.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1월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시정 연설을 통해 헌법 개정과 전통적 남북관계의 단절을 선언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진단

북한의 ‘두 개의 교전국’ 선언과
우리의 대응 방향

‘우리 민족끼리’ 전술 대신
‘무력 점령’ 공세 전환
민족동질성 강조하며 北 내부 혼란 활용해야

북한은 지난해 말 8기 9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 그리고 올해 초 14기 10차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서 김정은은 “북남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하고 대적 사업에서 단호한 정책 전환”을 선언했다. 그 핵심은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교전국’ 관계로 재설정하고, 그에 따라 대남 관계를 ‘대적 사업’ 차원으로 근본적인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여기서는 8개의 논점을 제기하고, 대응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1‘새로운 입장’에서 무엇이 새로운가?
북한은 전통적으로 한국 청중과 북한 내부 청중에 대해 정반대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한국 청중을 향해서는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니까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우리 민족끼리’를 그리고 한국이 미국과 결별하면 평화통일을 할 수 있다는 ‘자주·평화·통일’을 설파했다. 그런데 북한은 예를 들어 2000년대 ‘햇볕정책’ 시대에도 내부 청중을 향해 김정일의 통일관은 무력 통일관이고, 평화에 대한 환상을 가지면 절대 안 되고, 사상과 체제가 다르며 미제의 식민지인 남조선에 대한 적대시 자세를 흩트리지 말 것을 교시했다. 2023년 말~2024년 초 북한의 ‘새로운 입장’은 과거 북한이 내부 청중을 향해 교양했던 전략적 진심을 한국 청중을 향해 발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우리 민족끼리’ 전술을 포기하고 그 역량을 ‘무력 점령(통일)’ 공세 쪽으로 이전한 것을 의미한다.

2한국의 ‘민주’와 ‘보수’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한의 평가가 바뀌었나?
바뀐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00년 남북 정상회담(들) 직후에도 북한은 한국의 햇볕정책에 대해 “적들은 환상을 조성하여 사상을 해이하게 만들어 북한을 쉽게 먹어치우고자 한다”라는 식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3북한이 생각할 때 새로운 입장의 효과성 담보 배경은 무엇인가?
북한의 능력과 포부의 증가 그리고 호의적, 지정학적 구조의 대두다. 북한 문건을 보면 ‘전 역사에 걸쳐 한반도 안보 상황은 항시적으로 미제와 남조선의 책동 때문에 전쟁 직전 또는 반격(통일)전쟁 개시가 절박한 상황’이다. 이번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핵무기 사용을 암시하는 표현을 다수 사용했다는 것이다. 유사한 과장된 위협 언사가 항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사람들이 그 위협을 심각하게 평가한다. 능력이 증가했고 지정학적 순풍도 맞고 있기 때문이다.

4새로운 입장이 공세적인가, 수세적인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현상 유지 국가가 선명하게 힘의 우세를 유지하면, 수정주의 국가는 전쟁을 개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정주의 국가의 군사력이 현상 유지 국가에 비해 비등하거나 모호하면, 수정주의 국가는 모험을 시도할 수 있다. 북한은 자신의 군사 역량이 최근 이런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방어적 공격성이 더 위험하다. 현재 북한은 한·미·일의 강력한 대응에 직면해 있고 내부 상황도 좋지 않다. 과거 강대국 간 주요 전쟁은 스스로를 점점 쇠퇴할 국가로 판단하는 강대국에 의해 시작됐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그리고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그리고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러한 사례들이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전환한 데 이어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대남기구를 폐지하고 헌법 개정까지 시사하며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향하는 가운데 1월 16일 경기도 파주시 자유로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 군인이 외부를 주시하고 있다. (뉴스1)
5북·중·러의 ‘편의적 결속’은 단명할 것인가?
동북아에 새로운 지정학 구조가 등장할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1980~2000년대까지는 범서방권이 공세를 펼치던 시기였다. 그중 1990~2000년대는 미국 일극 체제였다. 동북아 지정학은 2008~09년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국면, 즉 일극 체제 국면으로부터 미·중 경쟁 국면에, 또는 권위주의 진영의 수정주의적 공세 국면에 접어들었다. 북한이 대남 적대시 및 공개 핵 확장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2008~09년이었다. 북한의 이러한 정책 변화는 동북아 지정학의 국면 변화로부터, 즉 중국의 수정주의적 대외 공세 전략 추진 국면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강대국 간 지정학적 힘의 관계와 전략 국면은 매우 느리게 변화한다. 현재의 동북아 지정학 국면에서 북·중·러는 미국의 약화라는 전략 이익을 공유하면서, 때로는 함께 때로는 개별적으로 대미 수정주의 공세를 추진 중이다.

6새로운 입장 또는 트럼프 재선 때문에 단·중기적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까?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중·러 그리고 한·미·일 각국은 현재의 힘의 균형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바뀌지 않도록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게 ‘균형 잡기’ 행위를 하고 있다. 각 나라의 최고 지도자 그리고 그를 둘러싼 안보 관료 집단의 판단력의 총합이 ‘평균적으로 현명하다’고 가정한다면, 단·중기적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도에 변화가 있을 개연성은 매우 낮다.

7북한 당국은 인민 생활 증진에 관심이 있을까?
관심이 없다. 국방공업에 자원을 최우선적으로 몰아주는 ‘선군 경제’ 원칙은 1995년부터 시작됐다. 이 원칙은 김정은 통치 시기에도 관철됐다고 할 수 있지만 명시적으로 표명되지는 않았다. 북한은 코로나 2차 연도인 2021년 8차 당 대회에서 ‘국방력 강화’를 내걸었다. 경제 상황과 당면 전망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024년 14기 10차 최고인민회의는 ‘국방력 급진적 강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을 내세웠다. 이를 보면 북한은 선군 경제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군수공업에 최우선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정책을 계속 실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민 생활과 관련된 정책은 의도적으로 소홀히 되고 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지방 공업 육성을 언급했다 해도 선전선동을 위한 말잔치에 그칠 것이다.

8북한이 통일 관련 정치적 법적 규범을 바꾼 것이 남북관계 양상과 통일 여부에 영향을 미칠까?
북한이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해 새로운 입장을 채택해 ‘동족, 동질’을 거부하고 두 개의 교전국으로 가고 싶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형성된 동족과 동질이 발생시키는 여러 상황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일부는 두 국가를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지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관적 바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남북 간 적대적 경쟁을 발생시키는 구조적 조건은 상존할 것이다. 더군다나 북한이 가장 적대적인 두 개의 교전국 관계론에 집착하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통일과 관련해 결국에 중요한 것은 어느 쪽(진영)이 힘의 압도적 우세를 달성할 수 있는가의 여부다.

우리의 대응 방안 세 가지
첫째, 북한의 입장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당면한 안보 도전은 변화하지 않았다. 안보 관련해서는 현재 추진 중인 정책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즉 한국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서방 국가들과 협력해 북한의 능력 증가 및 의도 상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최소한 상쇄 조치, 바람직하게는 압도 조치를 취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상쇄 조치 구현에서 실패하게 되는 경우 한국은 북한에 그들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둘째, 한국의 통일·대북정책은 평화와 민족동질성 회복 문제를 새롭게 강조해야 한다. 북한이 이번에 내세운 ‘두 개의 교전국가’론은 전쟁 선포이자 민족동질성 부정에 관한 선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북한의 동족·동질관계의 거부에 맞서 1000년의 통일국가의 유산인 남북한 주민 간 언어와 문화, 역사의 공유 그리고 혈연적 연계를 중심으로 한 동족관계와 동질관계를 강조해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은 북한의 교전국가론 및 대남 무력 점령론에 맞서 남북 간 평화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점진적 평화통일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남북 간 화해협력과 공존공영의 방도 모색, 자유와 인권 보장, 그리고 민주와 복지, 그리고 체제 간 선의의 경쟁을 강조해야 한다.

셋째, 한국은 김정은이 갑작스럽게 취한 새로운 입장이 북한 내부에 야기할 혼란을 포착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은 단지 북한의 대남용 통일정책이었을 뿐 아니라 지난 80년 동안 북한 정권의 정체성 및 정당성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져왔다. 갑작스럽게 새로운 입장을 취하는 것은 북한 주민에게 혼란을 야기할 것이고, 또한 북한 정권 내부에 유·무형의 알력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한국은 내부 혼란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한편, 북한이 폐기처분한 민족 관련 정치·통일 담론을 일련의 수정을 거쳐 과감하게 재활용하는 방도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의 자주·평화·민족대단결론 대신에 자유·평화·민족대단결, 북한의 ‘조선은 하나다’ 대신에 ‘남북한은 하나다’ 등의 구호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국제 체육행사에서 우리 선수단이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등의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해 11월 25일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24일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찾아 정찰위성 운용 준비상태를 점검하고
24일에 촬영한 항공우주사진들을 봤다”고 보도했다.(평양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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