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82024.3.

서울 성동구 행당동 매장에서 붕어빵 가게를 운영하는 ‘탈북민 사장님’ 이홍숙 성동구협의회 탈북민정착지원위원장(가운데)이 매장에서 현장실습생들과 붕어빵과 계란빵을 굽고 있다.

이사 온 이웃

서울 성동구협의회 ‘북한이탈주민 자립 지원 프로포즈’

3년 만에 ‘붕어빵 사랑방’ 두 곳 운영
지역 주민 수요 파악해 창업 성공

“붕어빵 두 개 주세요.” “여기 계란빵 세 개요.” 서울시 성동구 행당초등학교 인근 16㎡(약 5평) 남짓한 붕어빵 가게. 이곳 사장인 이홍숙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성동구협의회 탈북민정착지원위원장이 미소를 머금은 채 능숙한 솜씨로 붕어빵과 계란빵 기계를 돌리기 시작했다.

붕어빵과 계란빵은 이 가게에서 파는 겨울철 대표 메뉴다. 날이 더워지는 시기에는 계절 특성을 고려해 공갈빵(속이 텅 비고 겉만 부풀게 구운 빵)과 슬러시(Slushy·떠 먹을 수 있게 살짝 얼린 음료) 같은 계절 메뉴를 판다. 팥 앙금과 슈크림이 들어간 붕어빵과 계란빵 가격은 각각 개당 500원, 1500원. 매장 앞 진열대에 이제 막 구워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붕어빵과 계란빵이 금세 한가득 쌓였다.

붕어빵 가게 사장님 된 탈북민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이곳은 성동구 ‘붕세권(붕어빵과 역세권을 합친 신조어로, 주변에 붕어빵을 파는 곳이 가까이 있어 붕어빵을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주거 지역을 가리키는 말)’을 이끄는 대표 매장”이라며 “머리부터 꼬리까지 팥 앙금으로 아낌없이 속을 꽉 채워 마지막 한입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위원장은 함경도가 고향인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다. 2009년경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굶주림을 면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 한국에 온 지 15년 만에 ‘붕어빵 사장’이 된 것이다. 이 위원장은 “무일푼 탈북민이 창업의 꿈을 이루고 자립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평통 성동구협의회와 성동구의 도움이 컸다”며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교육과 지원을 받은 나는 진짜 행운아”라고 말했다.

제17기부터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해온 이 위원장은 2022년 탈북민 자립 지원 사업에 주목했다. 당시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사회 정착을 위해 성동구협의회가 성동구청과 주민센터의 협조를 얻어 구청이나 주민센터 앞에서 붕어빵과 계란빵을 팔면서 탈북민 일자리 창출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저 붕어빵을 팔았을 뿐인데, 자립 의지가 있는 탈북민에게는 직업 현장 실습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판매 수익금을 매일 정산해 탈북민 모임에 전달하는 결실까지 얻게 됐다. 성동구청과 성동구 내 주민센터의 지원으로 탈북민이 자립할 수 있는 계기를 얻은 것이 고마워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취지로 수익금 일부를 꾸준히 기부했다. 그러자 어느새 탈북민들 얼굴에는 뿌듯함과 자부심이 가득 차올랐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 매장에서 붕어빵 가게를 운영하는 이홍숙 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윤기철 성동구협의회 회장(맨 왼쪽),
김재환 성동구 협의회 감사(왼쪽에서 세 번째)가 붕어빵 가게 창업에 도전한 탈북민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 과정을 경험하며 이 위원장은 붕어빵 창업을 결심했다. 자신이 솔선수범하면 탈북민도 창업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성동구협의회가 실시하는 탈북민 자립 교육 과정에 등록했다. 한국 사회에 정착하려면 반드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봉사와 교사로 활동하면서도 틈틈이 창업 준비에 매진했다. 북한에서 근무할 때도 인정받았던 그의 성실함은 남한 사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3개월 동안 발품을 팔아가며 점포를 찾았고, 붕어빵 장사가 손에 익을 무렵 그에게 기회가 왔다. 지금 장사하고 있는 행당초등학교 인근 점포를 얻게 된 것이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곳에서 창업에 나섰다.

이 위원장의 솜씨와 성실함을 잘 아는 성동구협의회 자문위원들이 “열심히 해보라”며 독려했다. 그는 “내가 붕어빵 창업에 도전하면 내 일터에서 탈북민들이 직업훈련을 받아 자립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데, 그들을 사회에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창업에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23년 12월 이 위원장은 남한에서 15년 동안 악착같이 모은 돈 수천만 원을 모두 투자해 붕어빵 가게를 열었다. 간절함과 성실함이라는 씨앗이 성공이라는 과실을 맺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임대료와 재료비를 주고 나니 남는 돈이 얼마 없었다. 이 위원장은 “자문위원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고, 성동구협의회가 지원해준 임대료 덕분에 처음의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면서도 “자금 지원에 익숙해지면 결코 자립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후에는 성공 방정식을 나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성동구협의회, 붕어빵 창업 컨설팅 지원
탈북민 특유의 북한 억양이 남한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켜 남몰래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현장 실습을 나온 탈북민에게 ‘왜 그렇게 말을 세게 하느냐’고 묻는 남한 손님들이 적지 않았던 것. 그때마다 이 위원장이 나서 “말투가 강해서 그렇지 마음은 부드러우니 오해하지 말라”는 대답으로 남한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줬다. 고개를 갸웃하며 붕어빵을 사러 왔던 손님들은 이젠 단골이 됐다. 이 위원장의 매장에서 현장 실습을 하는 탈북민 김연옥(가명) 씨의 이야기다.

“억양 때문에 곤욕을 겪고 나니 남한 사람들 앞에서 점점 위축됐다. 그럴 때마다 이 위원장님과 윤기철 성동구협의회 회장님이 격려해준 덕분에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자’며 생각을 전환할 수 있었다. 이제는 웃으며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에서 왔다’고 말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굳이 억양을 고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위원장은 붕어빵 창업 노하우를 전수하며 현장 실습생인 경력 단절 탈북 여성들을 관리하는 멘토가 됐다. 제대로 살기 위해 북한 땅을 탈출했던 탈북민이 월 매출 수백만 원을 올리는 ‘남한 사장님’이 된 셈이다. 이 위원장은 “내 사업을 한다는 사실에 몸이 힘든 것도 모를 만큼 즐겁고 뿌듯하다”며 “예전에 식당에서 온종일 일하고 받은 월급이 250만 원 남짓이었는데, 지금은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면서 임대료, 재료비, 공과금 등을 제외하고도 그 정도 수익을 내고 있다”며 흡족해했다.

이 위원장의 사례를 통해 탈북민 창업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뒤 성동구협의회는 탈북민 자립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경력 단절 탈북 여성에게 붕어빵 창업 컨설팅은 물론 근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23년 시작된 ‘내가 통일 역군이다’ 사업은 경제·사회적 이유로 근로 단절을 겪은 탈북민에게 이 위원장을 비롯한 멘티가 창업 컨설팅과 솔루션을 지원하는 성동구협의회의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붕어빵 가게 2곳(본점, 1호점)이 개점했다.

윤기철 성동구협의회 회장은 “요즘은 다른 협의회에서 ‘어떻게 이런 붕어빵 창업 컨설팅을 기획하게 됐느냐’, ‘탈북민 자립 지원 사업을 3년 넘게 지속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뭐냐’고 물어보고는 한다”며 “어려운 점도 많았고, 잘못된 선택을 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세 가지 원칙을 지킨 덕에 지금의 탈북민 자립 지원 사업을 3년째 운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홍숙 위원장이 서울시 성동구 행당초등학교 인근에 마련한 16㎡(약 5평) 남짓한 붕어빵 가게 입구와 맛있게 익은 붕어빵.

탈북민 자립 및 창업 3계명
그 첫 번째 원칙이 ‘일회적인 현금성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의 경쟁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탈북민이 가게 운영이든 직업 체험이든 그 일에 필요한 모든 업무에 능숙해야 일을 장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동구협의회는 탈북민이 창업 전에 일정 기간 정도는 붕어빵 가게에서 현장 실습을 해보는 걸 원칙으로 했다.

두 번째는 ‘계약 문제는 신중하라’는 것이다. 김재환 성동구협의회 감사는 “탈북민들은 한국 생활이 오래됐어도 전문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은행 거래, 계약서 작성, 법률 문제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며 “반드시 계약 문제는 혼자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많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북민이 점포를 얻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창업자금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은 ‘시장 조사를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김 감사는 “탈북민 자립 지원 사업을 위해 창업 아이템을 정할 때 성동구 주민을 대상으로 해당 상권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물었더니 ‘붕어빵’을 꼽는 답변이 많았다”며 “사람들이 원하는 욕구를 파악하고 이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는 과정에 대한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북민에게 붕어빵 창업 노하우 전수하고파”
이 위원장의 붕어빵 가게 매대에는 ‘자유롭게, 평화롭게, 행복하게 함께 살아요’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그는 “단순히 음식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탈북민의 안정적인 자립과 소중한 꿈을 키워가는 탈북민 사랑방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이 가슴에 다는 명찰에는 ‘붕리스트(붕어빵+바리스트)’, 실습생인 멘토 명찰은 ‘인턴’으로 지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는 “탈북민의 열정과 희망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업이 연속성을 갖추면서 이 위원장의 뒤를 이어 ‘붕어빵 사장님’을 꿈꾸는 탈북민도 생겼다. 이 위원장과 함께 근무하는 탈북민 김미경(가명) 씨는 “몸이 아파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집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 위원장님의 제안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붕어빵을 구우며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요즘 행복하다”고 말했다.

성동구협의회의 목표는 이 위원장의 선례를 토대로 탈북민 붕어빵 매장을 10곳, 100곳으로 늘려 탈북민 일자리 창출과 자립을 돕는 것이다. 윤 회장은 “사회 공헌과 남북통일 대비 차원에서 탈북민의 정착 지원 사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사는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탈북민들이 앞으로 갚아나간다면 통일을 좀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 건 희 기자 사 진·지 호 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