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평화
전 세계 분노케 한 충격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
한 모자와 한 가족의 눈물겨운 북한 탈출기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감독 매들린 개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한 곳인 북한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두 가족의 이야기다. 촬영 시점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북한과 중국 국경 봉쇄가 시작되기 바로 몇 개월 전. 북한에서 마지막으로 알려진 탈북 장면을 극적으로 촬영한 것이다. 영화는 20여 년 전 탈북한 이현서 씨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강은 눈으로 덮여 있었고, 곳곳에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어요.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달빛과 별빛이 비춰줬어요. 신이 누구고 무엇인지 전혀 몰랐지만 국경을 넘을 때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다리가 덜덜 떨렸어요. 그 순간 저는 기도했어요.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제발 저를 도와달라고요. 그리고 하염없이 걸었어요.”
“두 밤 자고 올 테니까… 그게 마지막이었죠”
이 씨는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 과정을 담은 회고록 ‘일곱 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The Girl with Seven Names: A North Korean Defector's Story)’를 펴낸 후 전 세계를 돌며 북한 인권의 참상을 고발하고 증언하는 북한 인권 운동가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이 씨의 회고록이 계기가 됐다. 2016년 미국에서 진행된 사인회에서 만난 세계적인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책 내용에 감명을 받아 이 씨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를 물었다. 이 씨는 자신처럼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서 전 세계에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드 니로가 이 씨의 책을 제작사로 전달하고 매들린 개빈 감독이 제작에 참여하면서 결국 이번 영화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개빈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준비할 때만 해도 북한에 대해 잘 몰랐다. 영화를 위해 조사를 시작하면서 북한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다”면서 “나는 여기에 분노해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을 이 영화의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은 김성은 갈렙선교회 목사와 아들을 탈북시키려는 탈북민 이소연 씨, 온 가족이 함께 탈북을 시도한 노영길·우영복 씨 일가족이다. 김 목사는 탈북민들을 위한 인권운동가다. 그가 탈북민들을 돕는 데 온전히 삶을 바치고 헌신하게 된 계기는 1990년대 중반 중국으로 선교활동을 갔다가 압록강에 떠다니는 북한 주민들의 시신을 보면서다. 탈북 지원 활동 초기에 두만강 빙판에 넘어져 목에 철심을 박기도 하고, 중국 공안에 체포돼 고역을 치르는 등 생사를 넘나드는 숱한 위험 속에서도 23년간 1000명이 넘는 북한 주민을 탈북시켰다.
탈북민 이소연 씨도 북한에 두고 온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김 목사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한다. 이 씨는 북한 여군 군악대 출신이다. 군 제대 후 사회에 나오자 탄광에 배치됐다. 기계가 없어 전부 손으로 탄을 캐야 했다. 가난과 궁핍, 배고픔에 힘들었던 이 씨는 중국에서 물건을 밀수해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해 탈북을 결심했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낸 후 탈북을 결행하던 그날 저녁 아들과 생이별한 이 씨.
“아들이 그쪽으로 산을 넘어서 찾아온 거예요. 두 밤 자면 올 테니까, 돈 벌어 가지고 와서 밥 배부르게 해줄 거라고. 그때가 저녁 시간인데 찬 바람도 불고. 그냥 할머니 집에 가 있으면…. 그게 마지막이었죠.”
이 씨는 그날 밤 강을 건너다가 북한 국경 경비대에 잡히고 말았다. 2년 동안 혹독한 감옥 생활을 마치고 나온 이후엔 ‘탈북했던 사람’으로 낙인찍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자식 얼굴을 볼 낯도, 가족에게 돌아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이 씨는 다시 탈북을 시도한 끝에 성공해 남한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단 한 순간도 아들을 잊은 적이 없다.
김 목사의 도움으로 북한 브로커를 통해 어렵사리 아들과 연락이 닿은 이 씨는 잔뜩 기대에 부푼다. 그런데 아들이 브로커를 통해 중국에 입국한 후 연락이 끊겼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아들을 탈출시킨 북한 브로커를 그의 동료 브로커가 중국 경찰에 신고해 붙잡혀 북송됐다는 것이다.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른 이 씨는 아들의 생사를 수소문한 끝에 다행히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처음에 자결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 새끼는 내가 살려야겠다 싶은 거예요. 내가 안 살리면 누가 살리겠습니까. 제가 어미가 되어 가지고 저희 아들 꼭 살릴 거고요.”
“우리 좀 도와달라, 언니야”
비슷한 시기에 북한 탈출에 나선 노 씨 일가족은 모두 5명. 노씨 부부와 팔순의 노모, 그리고 두 아이다. 이들은 북한에서 강을 건너 중국으로 들어온 후 5일 동안 백두산 일대를 배회하다 먼저 남한에 온 가족을 통해 김 목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우리 좀 도와달라, 언니야. 우린 이제 돌아서지도 못하고 죽어, 이제. 우리 아무 데도 못 간다. 빨리 어떻게 해야지. 사는 게 너무 답답하다. 우리 좀 도와주시오.”
결국 이들은 김 목사의 도움으로 1만2000km에 달하는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선다. 백두산 인근에서 중국 선양을 거쳐 칭타오, 베트남, 라오스, 태국까지 삼엄해진 경찰 단속과 검문을 피해, 때론 깊은 밀림을 뚫고 국경을 넘는 길은 위험천만한 순간의 연속이다. 카메라는 이들의 탈출 과정을 따라가며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관객상과 시드니영화제 최우수 국제 다큐멘터리 관객상 등 7개의 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전 세계 40여 개의 영화제에 수상 후보로 올라 있다. 국내에는 1월 31일 개봉해 관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