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가 간다Ⅰ
양안관계 최전선 타이완 진먼다오에 가다
전쟁과 분단 아픔
특산품과 관광 상품으로 승화
지난 1월 13일, 타이완 총통 선거가 있었습니다. 선거 결과 친미 성향인 민주진보당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타이완은 어떤 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미국과 중국에 대한 외교정책이 달라져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입니다. 양안관계의 최전선에 있는 타이완 진먼다오(金門島)에 다녀왔습니다.
진먼다오는 우리에게 금문도(金門島)로 알려진 섬입니다. 타이완에서 비행기를 타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습니다.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 쑹산(松山) 공항에서 1시간 정도 거리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진먼다오의 위치입니다. 타이완 본섬에서는 200km 넘게 떨어진 곳이지만, 중국 대륙 샤먼(厦)시와의 거리는 가까운 곳은 2km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진먼다오가 왜 중국 대륙이 아닌 타이완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요?
국민당(국민혁명군)과 공산당(인민해방군) 간 국·공 내전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가 타이완으로 건너가기 전에 진먼다오가 타이완으로 가는 길목이 될 것으로 판단해 진먼다오를 요새화하게 됩니다. 장제스의 예상대로 1949년 10월 대륙을 점령한 공산당 인민해방군은 진먼으로 쳐들어오게 되고, 국민당 국민혁명군이 이에 응전하면서 구닝터우(古寧頭) 전투가 일어나게 됩니다. 국·공 내전에서 연패하던 국민혁명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이완섬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국·공 내전과 ‘8·23 진먼 포격전’
하지만 공산당 인민해방군은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1954년과 1958년 두 차례에 걸친 공격으로 진먼다오는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특히 1958년 8월 23일 인민해방군의 포격은 10월 5일 잠정 중지될 때까지 약 40여 일 동안 47만여 발의 포탄을 퍼부을 정도로 격렬하였는데요. 이 사건을 타이완에서는 ‘8·23 진먼 포격전’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포격전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다가 1981년 이후 멈추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진먼다오 곳곳에는 전쟁의 흔적이 차고 넘칩니다. 경비 초소와 지하 갱도, 전쟁 역사관, 전투 기념탑, 전쟁 구호 등 전쟁과 관련한 여러 가지 구조물이 있습니다. ‘적산갱도(翟山坑道)’가 대표적인데, 이 갱도는 사람뿐만 아니라 배도 드나들며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진먼다오 요새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구조물입니다.
소진먼(小金門)이라고도 불리는 례위(烈嶼)섬에서는 건너편 중국 대륙의 샤먼시의 모습이 육안으로 보입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양안은 평범한 바닷가 같으면서도 우리의 비무장지대(DMZ)와 같은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해안가의 경비 초소와 적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설치된 용치(龍齒)의 모습을 보며 ‘여기가 최전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먼다오 북쪽에는 마산관측소(馬山觀測所)가 있습니다. 마산관측소는 전망대로서 기능도 있지만, 대륙 상대 심리전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도 합니다. 대륙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해 확성기를 대륙을 향해 세워두고 방송합니다. 마치 우리 한반도 휴전선에서 남과 북이 서로 확성기를 통해 싸우듯 방송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한번은 ‘첨밀밀’과 ‘월량대표아적심’ 등으로 유명한 가수 덩리쥔(鄧麗君)이 군 위문공연과 함께 대륙 상대 심리전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덩리쥔의 노래는 대륙의 군인에게도 큰 인기를 끌어서 ‘낮에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지배하고, 밤에는 덩리쥔이 지배한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진먼고량주(金門高粱酒)도 진먼다오의 역사와 관계가 깊습니다. 진먼고량주는 진먼다오의 주민이자 인도네시아 화교였던 예화청(葉華城)이 집에서 술을 빚으면서 시작됐습니다. 술을 생산하고 남는 수수(고량)의 지게미는 소에게 먹였다고 합니다. 진먼다오 식당에는 소고기를 이용한 음식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인기인 것은 타이완의 대표 음식을 우육면(牛肉麵)입니다. 수수의 지게미를 먹여서 그런지 고기가 아주 부드럽고 맛이 좋습니다.
8·23 진먼 포격전 당시 진먼다오에 쏟아진 47만 발의 포탄 중에는 불발탄이 많았습니다. 농민들의 피해가 컸습니다. 농사를 짓다가 땅 속에 묻혀 있던 불발탄이 터져 사망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진먼다오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 불발탄을 활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농민들은 포탄을 대장간에 갖다 주었고, 대장장이는 이를 식칼로 만들었습니다. 포탄은 강한 무쇠로 만들어졌기에 이를 녹여 만든 식칼은 품질이 매우 좋았습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기가 사람을 먹여 살리는 도구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휴전선과 양안 모두 전쟁과 분단 극복하길”
우리는 양안관계를 보며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심에서 민주평통 동남아북부협의회 대만지회 위원들은 ‘타이중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조명하 의사 기억 활동과 타이베이 한국학교 학생들과의 평화통일 활동 등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 활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규일 동남아북부협의회 간사는 “타이완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뚫고, 반도체 왕국으로서 세계에 입지를 다진 것은 양안관계 갈등 속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반도체, 재생에너지 등 타이완은 잠재력이 풍부한 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곳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알리고 후배 세대에게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양안관계 최전선인 타이완 진먼다오에 다녀오면서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특산품과 관광 상품으로 승화시킨 진먼 사람들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진먼다오의 모습을 통해 우리 한반도와 접경 지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한반도 휴전선과 양안 모두에서 전쟁과 분단을 극복하는 미래가 펼쳐지길 희망합니다.
진성민 제21기 청년자문위원 기자(경기 이천시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