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82024.3.

탈북민 정착 이야기Ⅱ

북한이탈주민 의료지원 상담사 서향란

탈북민의 ‘마지막 보루’
“삶의 희망과 건강 지켜주고 싶어요”

대전에 소재한 충남대학교병원에서 북한이탈주민 의료지원 상담사로 근무하는 서향란 씨. 그는 퇴근 후는 물론 주말과 휴가 중에도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다닌다. 탈북민들에게 언제 긴급한 연락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의료지원 상담사로 근무하면서 온갖 응급 상황을 다 겪어봤어요. 제게 전화가 오면 느낌이 올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위급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아요. 북한에서 엘리트 계층에 있다가 탈북 후 심각한 우울증으로 끝내 삶의 끈을 놓은 분도 있었고, 8개월 된 아기를 놓고 잘 부탁한다는 전화에 부리나케 집으로 찾아가 구조했던 분도 있었죠. 그래서 저는 항상 ‘내가 마지막 보루’라고 되뇌곤 해요. 탈북민 중에는 외로움과 결핍, 안팎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힘들게 사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북한에서 탈출해 대한민국에 들어오기까지 숱한 고난을 겪은 탈북민들은 그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 때문에 쉽사리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3만4000여 명의 탈북민 중 상당수는 트라우마로 겪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이 많다. 탈북민 중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29%(북한인권정보센터, 2023년)나 된다.

“이 일에 꼭 어울리는 사람 되겠다” 다짐
천신만고 끝에 탈북에 성공한 서 씨이기에 누구보다 탈북민들의 사정과 어려움을 잘 안다. 그는 ‘고난의 행군’ 시기라 불리는 1997년 탈북해 중국의 친척집에 머물다 2001년 강제 북송됐다가 다시 탈북해 몇 차례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 끝에 2007년에 비로소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든 청소일이든 가리지 않고 일했다. 탈북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기는 했어도, 북송될까 마음 졸이며 하루하루 보내던 중국 생활보다는 나았다. 그러다가 2011년에 통일운동 NGO단체인 ‘새롭고하나된조국을위한모임(약칭 새조위)’에서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지원 상담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됐다.

“이력서의 학력란에는 북한의 고등중학교 졸업, 경력란에는 한국자유총연맹 환경미화원밖에 쓸 게 없었죠. 상담사가 되기 위한 교육도 받은 적 없고 자격증도 없었는데 무슨 용기가 났는지(웃음). 면접을 보는데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아무 자격이 없지만 일하면서 자격증도 따고 이 일에 꼭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고요.”

그의 당찬 모습이 통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렇게 같은 해 7월 충남대학교병원에 마련된 북한이탈주민 의료상담실에서 일하게 됐다. 대한민국 입국 후에는 일부러라도 같은 탈북민을 만나지 않으려 했던 그였지만, 막상 상담사가 되고는 탈북민 모임과 행사는 가능한 한 무조건 참석했다. 이 좋은 혜택을 탈북민들에게 많이 알리고, 특히 의료 분야에서 극히 소외된 이들을 최대한 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새조위가 여러 병원과 협약을 맺고 북한이탈주민 의료상담실을 만들어 정신적, 신체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탈북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탈북민에게 의료비 30%를 감면해주고, 연간 20명에게 무료 건강검진을 지원해줍니다. 또 긴급 의료 서비스, 간병 지원 등도 자체적으로 진행합니다.”

상담사로 열정적으로 일하면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10년이 넘으면서부터는 자신의 몸을 챙기면서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요령이 생겼다. 무엇보다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면서 그가 마음으로 정주하게 된 게 큰 도움이 됐다.

“상담사로 일하는 와중에 친구들과 밥 먹는 자리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그런데 제 결혼 소망이 무조건 형제가 많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저도 육남매 중 막내였고,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가족이 많은 집이 그리 좋더라고요. 처음 시어머니를 뵙던 날, 이렇게 말했어요. ‘제가 어머니를 잘 모실게요.’ 그러면서 여섯 시누이 집에 들어가 살게 된 거죠.”

내색하지 않고 표현도 서툴렀지만, 늦게 퇴근하는 그를 위해 집 안의 불을 환하게 밝히고 본인보다 며느리가 춥다며 보일러를 켜놓던 속정 깊은 시어머니였다. 작년에 돌아가셨을 때 한동안 공허한 마음 때문에 속병을 앓았다.

“새로운 탈북민의 길잡이 되고 싶어”
요즘 그의 관심사는 탈북민의 의료지원 상담사로서 어떤 각오를 하고 어떤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다. 상담사 업무를 통해 보람을 얻고 성과도 내고 있지만, 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곤궁한 생활을 잇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탈북민 중 우울증, 불면증, 강박증 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과반수를 차지해요. 지금의 치료로는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을 양지로 이끌기 위해 새로운 지원 서비스도 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또 개인적으로는 올해 중에 대학원 심리상담학과에 입학하려고 합니다. 하하.”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이 조금 더 건강하고 자유롭게 삶을 살고, 앞으로 입국할 탈북민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서 씨. 훗날 통일이 되면 고향에 가서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는 오늘을 살려고 합니다. 탈북민들이 저마다 삶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족을 비롯해 제게 마음을 열어준 분들을 위해, 저를 받아준 대한민국을 위해서요.”

글·사진 이종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