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24 세계인의 선택과 파장
세계화 30년 만에 닥친
불안한 국제 안보 질서
北 변수로 ‘코리아 디스카 운트’ 작동 경고등
올 한 해 미국과 러시아 대선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국가 리더십 교체를 위한 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대략 40여 개 국가에 걸쳐 전 세계 인구의 25%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한다. 그 결과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하고, 우리에게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 200여 개 나라 중에서 대체로 4년 주기로 대통령 선거에 준하는 선거를 치른다고 가정할 때, 한 해에 40여 개 국가에서 선거가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지난 1월에 있었던 대만 총통 선거의 경우 동북아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중대하고, 특히 11월 미국 대선의 향배가 가지는 의미 또한 워낙 중요하므로, 올해 글로벌 선거가 가지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한국의 국가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특히 국가 이익과 관련해 한국은 ‘국제사회와의 상호 의존성’이 매우 높은 나라이다. 역사적 사건들에서 보듯이 지정학적 차원에서 국제사회와 연결성이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높을 뿐만 아니라, 특히 한반도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 요인으로 말미암아 국제 안보 상황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최근 들어 꾸준하게 세계 12위권 내외를 오르내리는데, 대략 총 GDP의 80% 정도가 해외 교역을 통해서 창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정도의 GDP 규모 나라 중에서 국가 경제가 이런 정도로 수출입에 의존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국제사회와 심도 깊게 연결돼 있는지, 따라서 주요국의 대선을 포함해 국제정치 환경 변화에 얼마나 예의 주시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푸틴, 3월 대선 이후 방북 주목
지난 대만 선거의 경우 상대적으로 독립을 선호하고 동시에 미국과의 유대 관계를 강조하는 민진당이 집권에 성공했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대만 선거 결과에 대한 많은 분석을 제시한 까닭에 새롭게 덧붙일 부분은 없어 보인다. 다만 현재로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과 같은 안보 사태가 터질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이번 선거를 정점으로 양안 관계가 일정 부분 수면 아래로 잦아들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중국의 군사력이 아직은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대만 문제의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 대만 문제와 한반도 문제가 깊게 연동된 상황에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치밀한 분석은 필요하겠지만, 동시에 대만 문제에서 비롯된 과도한 안보 불안감에 빠질 필요도 없어 보인다.
한반도 통일 및 북한 문제 관련해 아무래도 우리의 관심은 3월 러시아 대선과 11월 미국 대선, 그리고 혹시 있을 수 있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 가능성에 모아진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푸틴 현 대통령이 6년 임기의 리더십을 다시 확보하게 될 것이고, 3월 선거를 전후로 푸틴의 북한 방문 및 북·러 정상회담이 예고된다는 사실은 한반도 안보 환경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북한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외교적 고립을 겪고 있다. 러시아 지도자의 북한 방문은 적어도 북한의 입장에서 일시적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다. 더구나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 사회로부터 상당한 종류와 수준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관련하여 러시아는 동 전쟁이후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이 제안하는 어떤 국제 안보 사안에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론적인 차원에서 이해하자면, 북한이 설사 7차 핵실험을 한다고 해도 러시아의 외면으로 유엔 안보리 추가 제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차제에 유엔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에도 국제사회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3월 러시아 대선과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국제 안보 질서는 요동칠 수 있다, 2월 12일(현지시각)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전통 카니발 퍼레이드. 우크라이나군 병사의 등을 찌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우크라이나를 먹는 모습을 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 조형물이 행진하고 있다.
(AP/뉴시스)
세계 주요국에서 진행되는 선거는 북한이 작년 말부터 일관되게 주장하는 ‘두 개의 한국’ 논리와도 중요한 연관성을 가진다. 기본적으로 작년 12월 말 북한 노동당 제8기 9차 전원회의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어이자 동시에 올해 들어 김정은이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메시지는 남북한 사이의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한국을 적대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족 관계’, ‘동질 관계’라는 표현을 통해 두 가지 서로 다른 메시지를 함께 던지고자 노력했던 것이 사실인데, 최근 들어서 남북한 관계를 두 개의 별도 국
가로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결과적으로 남북한이 ‘두 개의 국가’라는 북한의 인식이 정책적으로 완
전히 정립됐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트럼프 美 역사상 두 번째 ‘징검다리 재임’?
이와 관련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북한이 남북한 관계를 두 개 별도 국가로 상정한다는 뜻은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대북정책 및 통일정책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우리 정부가 제시하는 어떤 정책도 북한 스스로 거부할 정당성을 가지게 되며, 국제사회가 한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행하는 어
떤 결정도 수용하지 않을 일종의 북한 차원의 권리를 가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북한 스스로 국제사회와 더
욱 고립되는 현상을 초래하겠지만, 북한 차원에서 ‘민족 문제’에 얽매이지 않는 논리적인 일관성은 확보하
게 된 셈이다.
두 번째로 본 글의 주제인 2024년 국제사회 정세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앞서 언급한 푸틴의 북한 방문가능성을 포함해 북한은 소위 국제 질서 혼돈기를 맞이해 자국의 생존 공간 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 자명하다. 주요국의 리더십 선거를 계기로 발생하는 국제 질서의 다양한 혼돈과 불안정성은 북한의 돌출행동 가능성을 더욱 높였고, 국제사회 차원에서 이를 제재할 방안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돌이켜보건대, 북한은 국제 질서가 불안정한 상황을 자국의 생존 가능성 확장 기회로 삼고자 한 전통이 있다. 국제질서가 현재와 같이 요동치는 상황일수록, 북한의 비이성적인 돌출 행동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미국의 대선 전망은 어떠하고 관련한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1893년 4년을 건너서 두 번째 재임에 성공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에 이어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소위 ‘징검다리 재임’에 성공할 수 있을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선거 결과 전복 시도 연루’ 혐의를 포함해 91개 사안에 걸
쳐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 콜로라도와 메인의 주대법원은 트럼프의 후보 자격 박탈을 결정했고, 트럼프
는 이에 항소해서 연방 대법원으로 판단이 넘어간 상태이다. 총 9명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 대법원의 경우,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듯이 지난 2022년 바이든 대통령의 지명에 의해 미국 연방대법원 223년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이 합류하면서 보수 성향 6인과 진보 성향 3인으로 구성돼 있
다. 다양한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민주주의 본산인미국에서 사법부의 판단이 유권자의 결정을 앞서나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3월 5일 미국 내 15개 주(州)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슈퍼 화요일’이 분기점이 되겠지만, 공화당의 또 다른
후보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전세를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 번 더 생각해보자면, 지금
과 같은 국제정치 혼돈의 시기는 트럼프와 같이 포퓰리즘적 성향의 후보에게 일단은 유리한 측면이 있다.
과거의 경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동 사태와 같은 국제정치 혼돈이 미국으로 하여금 글로벌 리더
십을 발휘할 기회로 작용해 현직 대통령에게 분명한 플러스 요인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정부
가 외교 안보 사안에 투입할 수 있는 정책 자산이 매우 제한적이고, 특히 미국 유권자에게 소위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이제 일종의 고유명사가 된 터라, 국제 안보를 해결함으로써 비롯되는 리더십이
아니라 분명한 메시지의 발신에서 비롯되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형국이다.
‘한반도 평화’ 세계 평화와 번영의 시작
좀 더 큰 그림에서 가정을 해보자면, 오는 3월 대통령 선거에서 또다시 당선이 유력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서 트럼프와의 대화와 협상이 훨씬 수월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푸틴은 3월 당선 직후 전쟁을 끝낼 종전(평화)회담 가능성을 계속 흘리다가, 결과적으로는 우크라이나 문제
및 유럽 안보 관련해 트럼프 후보에게 유리한 메시지를 발신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중동 사태의 경우, 과
거 트럼프 대통령 시절이던 2018년 미국은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전격 이전
한 바 있다. 중동 문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판단과 스탠스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미국 유권자들은 좀
더 분명하고 간결한 중동 문제 해법 그 자체에 더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이후 30여 년 동안 거침없이 전개된 세계화를 뒤로하고, 국제 안보 질서가 전례가 없이 불안정
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나 올해는 한반도 운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국가의 대선을 연이어
예고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세계화 30년의 시간 동안 한국만큼 국제 자유주의 질서를 적극 활용한 나라도
드물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 12위권을 넘나드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동시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세
계 주요 경제 대국들 중에서 한국처럼 대외 교역에 강하게 연결돼 있는 나라는 없다. 그만큼 한국의 국가
이익에 국제 질서의 안정성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올 한 해에도 국제 질서 불안정과 연동된 북한 변수가
심각하게 작용할 것이다. 북한으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작동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반도 평
화는 세계 평화와 번영의 시작이라는 책임감이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박 인 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