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회 탐방
경기 용인시협의회
온 가족 축제 같은
‘가족 역사·통일 골든벨’
탈북민 지원 사업·청소년 통일 교육 확대할 것
용인시청 앞 잔디 광장. 잔뜩 찌푸린 하늘에 차가운 바람, 진눈깨비가 간간이 흩날렸다. 잔뜩 움츠러든 날씨지만 아이들은 별 상관없는 모양이다. 20명 남짓한 아이들이 연을 하늘 높이 올리기 위해 이리저리 쉼 없이 뛰어다녔다. 부모들도 어느새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함께 뛰었다.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영락없이 평범한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기지역회의 용인시협의회(회장 추상구)는 2월 6일 ‘2024 탈북 가족과 함께하는 설맞이 문화체험’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 초대된 이들은 용인시에 거주하는 탈북민 가족 36명. 이날 오전 협의회가 마련한 버스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다녀온 이들은 용인시청 앞 잔디 광장에서 연날리기를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쌍둥이 두 딸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임서해·김영화 부부는 “명절이 되면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많아진다”면서 “이런 행사를 마련해줘 감사한 마음이 들고 위로도 많이 된다”고 주최 측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용인시협의회가 이번 행사를 마련한 것은 올해 초 민주평통 의장인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탈북민에 대해 지원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 주민은 우리와 똑같이 자유와 인권과 번영을 누릴 권리를 가진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며 “정부는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 추진을 통일부에 지시하면서 민주평통에는 “탈북민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멘토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올해 중점 사업은 ‘탈북민 직업 체험’
추상구 회장은 “설맞이 행사는 올해가 처음인데, 협의회 운영위원들과 함께 준비하면서 탈북민들이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면서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행해 취업과 연계해보자는 의견이 많아 올해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시협의회는 민주평통 경기지역 31개 시·군 지역협의회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협의회 중 하나로 꼽힌다. 용인특례시청 청사 4층에 사무실을 둔 협의회 소속 자문위원 수는 모두 216명. 부회장 15명과 용인시 3개구(기흥구, 수지구, 처인구) 지회장 3명, 7개 분과위원장, 직능위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당연직으로 위촉된 시·도의원과 지역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펼쳐 온 사업가와 단체 대표, 지역 활동가 등이 주축이다.
추 회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협력업체인 ㈜지엔티이엔지 대표로 지난 6년간 지회장을 맡아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해오다 지난해 협의회 회장직을 맡았다. 기흥구 체육회장과 특전사 동지회 등 다양한 지역 활동에 대한 평가를 받아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추천받으면서 참여하게 됐다.
‘2024 탈북 가족과 함께하는 설맞이 문화체험’ 행사를 주최한 용인시협의회 추상구 회장(오른쪽에서 여덟 번째)과 임철희 간사(왼쪽에서 세 번째)를 포함한
임원 및 자문위원들.
2013년부터 11년째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임철희 간사는 비영리 연구법인인 건설경제연구원 원장이다. 아들만 셋을 둔 임 간사는 “세 아들 모두 군대에 보내야 하다 보니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현실과 마주쳤고, 우리나라가 안정되고 더 부강해지려면 통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때부터 작은 봉사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용인시협의회 간사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시협의회는 매년 1월 1일 용인중앙공원 현충탑 참배를 시작으로 한 해 업무를 시작한다. 협의회 사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족 역사·통일 골든벨’이다. 2016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9년째다. 협의회 행정 실무를 총괄하는 조경미 행정실장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퀴즈대회인 KBS의 ‘도전 골든벨’처럼 어른들 또는 가족들을 대상으로 역사나 통일과 관련된 퀴즈대회를 열면 좋겠다 싶어 시도해봤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축제 같은 ‘가족 역사·통일 골든벨’
가족 역사·통일 골든벨은 200팀이 참가해 마지막까지 남은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우승팀에게는 금 5돈(18.75g)을 수여한다. 1팀당 참가 인원은 2명. 가족 누구나 팀을 이뤄 참가할 수 있다. 모집은 선착순으로 진행한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매년 인기가 높아져 지난해에는 공고한 지 3일 만에 접수를 마감했다. 임 간사의 설명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신청자가 적었어요. 참가자들도 많이 낯설어하시고. 그런데 이제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도 생겼어요. 가족 골든벨이다 보니까 할아버지하고 손자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고, 형제자매끼리 나오는 경우도 있고. 중간에 댄스 경연대회나 장기자랑도 하거든요. 대회 자체가 무겁지 않고, 온 가족이 함께 나와서 웃고 떠들면서 축제 같은 분위기가 되죠.”
용인시협의회가 2016년부터 성공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가족 역사·통일 골든벨’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문제를 풀고 있다
대회 때는 온 가족이 출동한다. 한번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8명이 나온 가족도 있다. 참가자 2명은 문제 풀고 나머지 가족 6명은 응원했다. 가족들이 함께 같은 옷을 맞춰 입고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대회 참가자는 400명이지만 응원하러 온 가족까지 합하면 1000명 가까이 행사장을 가득 채운다. 대부분 용인시에 거주하는 일반 시민들이다. 덕분에 민주평통이라는 조직이 어떤 곳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일반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추 회장은 “민주평통에 대한 홍보 효과가 제일 큰 것 같고, 역사에 대한 교육도 학교에서 교육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같다”면서 “민주평통 지역 위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통일 확산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통일 페스타’와 ‘사랑의 김장 나눔’ 봉사
용인시가 매년 9월 말을 전후해 개최하는 ‘용인시민의 날’ 축제 행사와 함께하는 ‘통일 페스타’도 협의회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시에서 마련해준 부스에서 북한음식 체험과 북한 문화와 언어 등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지난해에는 북한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 ‘인조고기밥’과 ‘두부밥’, ‘속도전떡’ 등을 선보여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색다른 먹거리 체험을 선사했다.
협의회는 연말이면 용인시에 거주하는 탈북민을 위해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도 진행한다. 이 행사를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현재 용인시에서 파악하고 있는 관할 지역 내 거주하는 탈북민은 650여 명 정도. 이들 중 경제 상황이 어려운 100가구를 시에서 선정해 협의회 자문위원들과 함께 담근 김장 20kg짜리 두 박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 행사의 목적이다. 추 회장이 전하는 에피소드 한 토막이다.
용인시협의회가 지난해 9월 23일 ‘용인시민의 날’ 행사에 참여해 운영한 북한음식 체험 부스(위)와
연말 ‘북한 이탈주민과 함께하는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 기념 사진.
“작년에 김장할 때 보니까 이분들이 배추에 김장 속을 넣는 게 조금 달라졌더라고요. 욕심이 많아서인지 전에는 속을 엄청 넣었거든요. 그런데 집에 가서 먹어보니까 짜잖아요. 작년에는 너무 조금 넣는 것 같아서 제가 오히려 더 넣으라고 했더니 많이 넣으면 짜다고 하더라고요. 이분들이 너무 고마워해서 매번 보람을 느끼죠.”
협의회는 올 연말에도 김장 나눔 행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협의회는 또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탐방 등 젊은 세대들이 통일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추 회장은 “지난해 경기부의장과 경기지역 31개 시·군 협의회장이 경기도교육감을 만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일 인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면서 “올해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용인시협의회가 지난해 9월 23일 ‘용인시민의 날’ 행사에 참여해 운영한 북한음식 체험 부스(위)와
연말 ‘북한 이탈주민과 함께하는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 기념 사진.
글·엄 상 현 기자 사 진·이 상 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