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82024.3.

북한 리얼 스토리

나는 고발한다, 이 참혹한 현실을

지금 김정은과 북한은 새로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핵보유국임을 과시하는 동시에 하루걸러 한 번씩 미사일을 쏘고 전쟁 운운하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평양의 이런 움직임과 다르게 북한 주민들은 매일 생존과 전쟁 중이다. 안팎으로 꽉 막힌 사회다 보니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은 무척 어렵다. 장막의 틈 사이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될 뿐이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쪽배에 운명 맡기고 목숨 건 탈출
이 책의 작가는 ‘반디’라는 필명의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이다. 어렵게 외부세계로 반출된 작품으로 반디는 잔인성과 폭압적인 북한 체제를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통렬하게 비판한다. 더불어 일상에서 자행되는 북한 정권의 압제와 씻기 힘든 상처를 입고 피해자가 되는 살 떨리는 현실을 고발한다.

“나는 아내의 손을, 아내는 나의 손을 부둥켜 쥐고
침대머리에 걸터앉은 채 애들처럼 흐느끼며 우리는
울고 또 울었어. 그리고 결심했네. 그 어떤 성실과
근면으로써도 삶을 뿌리내릴 수 없는 기만과 학정과 굴욕의
이 땅에서의 탈출을 말이네.”
-‘탈북기’


‘탈북기’는 왜 목숨을 걸고 북한을 떠나야 하는지 눈앞의 모습처럼 증언한다. 많은 북한 주민이 탈북을 꿈꾸지만 가족과 현실이 발목을 잡고 있기에 쉽게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목장에서 가축들의 잔등에 지워지지 않게 불에 달구어 찍어대는 쇠도장처럼 149호 역적 계층의 남편을 둔 문영희는 홀몸도 아닌데 부문당비서로부터 성희롱을 당한다. 부문당비서는 능력이 있지만 출신성분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는 남편의 입당을 도와주겠다면서 접근한다. ‘개죽’을 끓여 삼키며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문영희는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암만 가슴이 저리고 쓰려도 이 일은 혼자 삼키고 살아나가는 길밖에 없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 리일철은 통곡한다. 기차로 이동을 한 후 쪽배 한 척으로 탈북을 시도한다. 해안경비대나 순찰정의 총알에 맞을 수도 있고 풍랑에 나뭇잎처럼 삼켜질 수도 있지만 살아서 최악의 고뇌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죽어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낫겠기에 쪽배에 운명을 맡기고 목숨을 건 탈출 길을 나선다.

외부세계에서 흔히 북한을 ‘평양공화국’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수도인 평양 시민과 지방 주민들의 생활방식이나 당국으로부터 받는 혜택에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지방과 수도를 구별하고 따로 수도시민증도 발급한다. 그렇지만 평양시민이 국가의 법질서를 엄중하게 어긴 경우 평양시민증을 회수하고 지방으로 추방한다.

한경희의 집은 아파트 6층의 맨 앞집이어서 창문들이 각각 남쪽과 서쪽을 향하고 있다. 남쪽 창으로는 김일성광장 남쪽 무역부 청사 측벽에 붙은 카를 마르크스의 초상화가 내다보이고 서쪽 창으로는 광장 주석단 후면에 걸린 김일성의 초상화가 보인다. 그의 아들 명식의 눈에는 그 초상화들이 보이지 말아야 했다. “어비! 어비!” 아들은 초상화를 본 후 입귀에 거품을 물고 눈이 희뜩 돌아가버렸다.

‘유령의 도시’이자 행사의 도시 평양에서 튀는 행동은 곧 눈에 띈다. 날마다 퇴근 무렵인 저녁 여섯시부터 다음 날 출근시간 전까지 창문들에 청색 덧커튼을 치곤 했다. 초상화를 보면 발작하는 허약 체질 아들의 병을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민들에게 알린다. 우리는 금방 세인을 전율케
하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였다. 아홉시 오십오분
현재 백만 군중이 자기들의 대기 장소에 완전히 집결되었다.
폭우가 금방 멎은 최악의 사십오 분간에 우리의 백만 군중은….”
-‘유령의 도시’


북한 정권에 일사불란하게 가장 크게 호응하고 동원되는 평양시에서 행사에 저촉되었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재판이 된다. 그중에서 가장 큰 형벌은 ‘추방’이다. 어느 날 밤 한경희네 살림살이가 트럭에 실렸다. 그들이 받은 판결 내용은 ‘가정혁명화에 등한하고 마르크스 초상화를 비속화하고 수령님의 초상화를 솥뚜껑에 비기는 등 당의 유일사상 체계를 세우는 사업에서 심히 엄중한 과오를 범한 것으로 하여….’였다.

독버섯 같은 북한 체제의 현실
공개재판은 뒷산 언덕에 자리 잡은 공설운동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끌려나온 것은 장공장 기사장 고인식. 죄명은 당에서 관대하게 주요 직책을 맡겨주었음에도 높은 충성심을 발휘하는 대신 인민들의 식생활에 막대한 곤란을 가져오게 한 것이 엄중시된다는 것. 반혁명분자에 대한 변호는 없었다.

“저 빨간 버섯, 저 독버섯을 뽑아버려라.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영!”
-‘빨간버섯’


사람들은 시당위원회 청사를 ‘벽돌집’이라고 부르고 또 한편으로는 ‘빨간버섯’이라 말한다. 지상낙원 건설이라는 허울 좋은 그 간판에 속아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세상은 독한 것일수록 고운 허울을 뒤집어쓰고 유혹한다. 고인식이 절절하게 외친 것은 독버섯 같은 북한 체제의 현실을 직시하고 정말로 깨우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내뱉은 말이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은 비참한 현실에 놓여 있다. 드러내놓고 저항할 방법이 없다. 체제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곳에서도 제대로 된 사고를 하는 사람들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탁월한 묘사는 외부세계를 향한 구원의 손짓이다. 북녘 땅 그들에게 자유와 희망은 언제쯤 도착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