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62021.06

진단

한미 정상회담 후,
남·북·미 선순환을 위한 과제



최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와 내용을 살펴보고, 한미, 북·미, 남북관계의 선순환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살펴본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 평화의 시계가 2년 4개월째 멈추어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모두 교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촉 시도와 대북정책 검토 결과 발표도 있었지만 북한의 호응은 아직 없다. 오히려 3월 중하순과 5월 초 북한의 대남·대미 비난 담화는 현재의 교착국면에 대한 남북 간 그리고 북·미 간 인식 격차를 뚜렷하게 드러내기도 하였다. 남북 간, 북·미 간 대화 재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난 5월 21일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는 향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한미가 공감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는 우선 미국의 정권교체 이후 한미 정상이 북핵 문제 해결의 목표와 방법, 원칙에 대해 큰 틀에서의 공감대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이라는 목표를 강조하고, 이에 따른 실현 방법으로 외교와 대화를 활용할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하여 방법을 실천하고 목표를 실현해 나간다는 원칙을 천명하였다. 이 목표와 방법, 원칙은 북한도 이미 공감해 온 바이며 지금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외교와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에서 중요한 문제는 구체적 방법론이다. 이번 공동성명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한미가 공감하는 구체적 방법론은 단계적 동시교환의 추구일 것이다. 지난 4월 30일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일괄타결도 전략적 인내도 아닌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단계적 합의를 추구할 것임을 사실상 공식화했으며, 비핵화의 단계적 진전에 따른 제재 완화를 시사했다. 그리고 이 방법론은 한국 정부와의 사전 조율을 거친 것으로 알려진다. 과거 미국 행정부의 ‘선 비핵화론’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이와 같은 전환은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였던 부분적 비핵화와 부분적 제재해제의 맞교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핵협상 전망에 긍정적 요인이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이라는 목표를 강조하고,
이에 따른 실현 방법으로 외교와
대화를 활용할 것임을 밝혔다.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기초하여 대화를 추진한다고 확인한 점도 향후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에 긍정적 요소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은 남북관계의 전면적 발전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 그 연장선에서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뿐 아니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 대한 합의까지 담았다.

  이 두 합의에 기초한다는 원칙은 향후 협상의 방향과 내용에 대한 불확실성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서명한 이 두 합의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공식적 존중은 북한에 보내는 친화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더욱이 판문점 선언에 대한 존중은 남북협력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 의사 표명과 더불어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 장애가 되는 제재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긍정적인 명분과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향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에 기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미국 또는 남한과의 대화에 호응할 만한 구체적인 조치 혹은 메시지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특히 북한이 일관되게 요구해 온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 관련 조치나 한미연합훈련의 중단과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 판문점 선언과 남북협력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공식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의 유연화 검토와 같은 표현도 없었다.

지난 5월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백악관

남·북·미 평화협력과 한미연합훈련
  북한은 사실 그동안 대미정책 및 대남정책 관련 입장을 매우 뚜렷하게 밝혀왔다. 북한은 지난 1월 제8차 당대회를 비롯한 여러 계기에 북·미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를 강조해 왔고, 남북대화 재개의 사실상 필요조건으로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해 왔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개선 여부는 각각 남한과 미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며, 이 입장은 ‘강대강 선대선’ 대응 원칙을 포함한다. 이러한 입장은 최근 3월과 5월 초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실행, 미국의 북한인권 문제제기 등과 관련하여 발표한 일련의 대남·대미 비난 담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북한의 입장을 감안할 때 북·미대화 또는 남북대화의 재개 전망을 낙관하기는 아직 어렵다. 미국은 북한에 공을 넘겼으며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북한도 당분간 관망세를 취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구체적인 메시지와 행동을 주시하며 그에 따라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향후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평화프로세스를 촉진하기 위해 한국의 능동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했다고 한다면, 이제 앞으로는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재개하고 진전시켜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후속 조치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구체적인 명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미가 북한에 제시할 수 있는 대화 재개의 명분으로 가장 현실적이며 핵심적인 조치는 8월 한미연합훈련의 연기 또는 취소일 것이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대북적대정책의 상징이자 실질적 위협·압박으로 인식하면서, 자신을 적대하는 한미연합훈련과 평화·협력을 모색하는 북·미대화 또는 남북대화가 양립되기 어렵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따라서 오는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의 연기 또는 취소는 북·미대화와 남북대화의 재개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만약 8월 이전에 북·미대화 또는 남북대화가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8월 한미연합훈련이 실행된다면 북한의 반발이 예상되며, 대화 또는 협상이 중단되거나 지체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8월 한미연합훈련이 실행될 경우 북한이 전략무기 시험 발사로 대응하고 한반도 정세는 급격히 냉각되어 장기적 교착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미동맹 차원에서 한국군 55만 명에 코로나19 백신을 직접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사진은 5월 23일 서울역 국군장병라운지 ⓒ연합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어떻게 시작할까
  2018년과 2019년에도 한미연합훈련 실행 여부는 한반도 정세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2018년 초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시작은 2017년 12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연기 의사 발표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2019년 8월 초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협상을 앞두고도 한미연합훈련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강하게 항의한 바 있다. 이 친서의 내용은 2019년 6·30 판문점 회동에서 북·미 정상이 수주 이내 개최를 약속한 실무협상이 10월까지 지연된 주된 이유가 한미연합훈련 문제와 직결됨을 보여준다. 8월 한미연합훈련의 연기 또는 취소는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재개 여건 마련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치가 될 수 있다.

"남북합의 이행을 위한 제재 문제
해결 노력은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중요한 대북 메시지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화 재개 이후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의 북한 여행금지 해제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도 북·미 간, 남북 간 대화의 재개와 지속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여행금지 해제는 재미동포 이산가족의 방북과 상봉을 가능하게 하면서 북·미 간 인적 교류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이산가족 방북과 상봉은 코로나19 상황 극복과 연동되어 추진될 수 있겠지만, 여행금지 해제 조치는 미리 취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대북 인도적 지원도 그 자체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신뢰 증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식량, 비료, 방역물자뿐만 아니라 평양종합병원에 필요한 의료 장비와 기자재를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치들과 더불어 남북이 이미 합의한 교류협력 사업 이행에 장애가 되는 제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현 상황에서 개성공단 재개,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등의 남북협력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엔제재의 포괄적·상시적 면제가 필요하다. 기존 남북합의와 남북협력 추진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는 유엔제재 면제 확보를 위한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합의 이행을 위한 제재 문제 해결 노력은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중요한 대북 메시지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화 재개 이후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남북합의 이행을 위한 정치적·행정적 동력을 강화하고 남북관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중요한 제도적 방안이 될 수 있다.

김상기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