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62021.06

코치들과 함께한 평화축구 트레이닝

평화사랑채

평화를 위한 목소리 내기



평화가 어떤 의미인지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평화라는 단어, 혹은 개념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되돌아보면 여러 가지 생생한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영국에서의 경험, 평화를 위한 신념으로
  어릴 적 런던에 있는 전쟁박물관을 방문한 나는 1, 2차 세계대전을 재현한 체험전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볼 수 있었다. 어린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었고, 너무나 무서운 경험이었다. 자라면서는 극우파 인종차별주의 단체들이 영국 국기를 남용하는 사례를 자주 접했다.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애국주의가 가지는 위험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당시 가족들은 나에게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에 가까운 개념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것은 이후 나의 도덕적 나침반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0대가 되고 토니 블레어(Tony Blair) 총리가 집권하면서 평화에 대한 생각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토니 블레어의 당선으로 18년간 집권해 온 영국 보수당 정권이 막을 내렸다. 그 18년 중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의 재임 기간은 11년이었다. 대처에 반대했던 많은 영국인들에게 토니 블레어의 당선은 큰 기쁨이었다. 블레어의 정책은 내 가족을 비롯한 많은 평범한 영국인들의 삶의 질을 크게 높였다. 그런 측면에서는 당시의 노동당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외교와 국방정책에서는 여러 차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영국은 ‘진보’ 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이라크 전쟁 참전, 유럽의 요새화, 반 이민 정책의 강화, 핵무기체계 갱신 등의 정책을 실행했다. 이처럼 정부가 국익이라 주장했던 정책은 사실상 영국 내의 치열한 사회 분열을 초래했다.

  블레어 정부의 대외정책은 특히 무슬림 사회와의 갈등을 야기했는데, 이 때문에 영국 내 소수 인종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나는 당시 정부 정책에 책임을 묻고 소수자들의 편을 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브래드포드대학에 진학했고, 평화학을 전공하며 지역에 고착화된 다양한 갈등을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안보’ 개념에 대한 문제 제기, 일반인들의 평화과정 참여를 통한 권한 부여(empowerment), 그리고 평화과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민간사회의 역할이라는 세 가지 의제를 위해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화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던 나는 먼저 세계를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영어강사 자격증을 땄다. 고민 끝에 유럽이 아닌 내가 잘 모르는 나라, 한국을 찾았다. 처음에는 1년만 있다가 돌아가자는 생각도 했지만, 한국에 온 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문화, 전통, 역사를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배움은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었고, 나는 한국을 무척 사랑하게 되었다. 더불어 평화활동가이자 학생으로서 한반도 갈등에 대해서도 배우기 시작했다. 남북 갈등은 한눈에 봐도 고착화된 갈등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구의 학자들이 한반도 분쟁을 권력과 영토를 위한 전통적인 국가 간 군사갈등으로 다루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결국 나는 영국에 돌아가는 대신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남북 갈등을 공부하기로 했다.

  대학원을 다니던 중 현재 내가 속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하 우리민족)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됐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우리민족이 국내의 대북인식 변화와 정부의 대북정책 개선, 인도협력을 통한 현장에서의 남북관계 개선 등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민족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큰 영광이다. 대학원에서의 공부와 민간단체 활동 경험을 통해 한반도에서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것을 배웠고, 한국에서도 보통의 시민들이 평화과정에 참여하고, 민간단체들이 정부의 평화정책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믿음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평화축구 축제 현장

축구로 배우는 평화
  2013년 나는 축구를 통한 평화교육, 즉 ‘평화축구’를 우리민족에 제안했다. 당시 우리민족은 남북 간 평화가 대북지원 현장뿐만 아니라 남한 내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기에 이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는 원래 (모든 영국인이 그러는 것처럼) 축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종의 참여적 방법으로서 스포츠가 평화과정에 갖는 역할에 관심이 많았다. 평화구축과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문화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을 더욱 많이 활용해야 한다. 더불어 스포츠와 같은 창의적이고 몸으로 표현하는 활동은 평화구축을 위한 에너지와 열정의 근원이 될 수 있다. 평화축구는 학생 중심의 참여적 교육이며, 다른 이들과 협력하는 경험,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평화로운 해결책을 만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여 학생들이 협력과 갈등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듦으로써, 참여자들이 추상적인 평화 개념을 벗어나 자기 자신의 주체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평화축구의 목표이다.

  지금까지 1,000여 명의 어린이와 250여 명의 성인들이 평화축구에 참여했다. 평화축구를 더 널리 확산하고 공교육에도 적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진행자가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평화축구를 함께 스스로의 평화 개념을 구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최근 나는 또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민족에서 국제협력의 일환으로 개최하는 국제회의를 준비하며 전 세계의 다양한 대북협력 전문가들을 만났고, 작년부터는 한국 정부의 장학금을 받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런 일들이 평화구축 과정에서 민간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있는 통찰을 얻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댄 가즌(Dan Gudgeon)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교육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