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62021.06

2018년 7월 16일 에티오피아 내 에리트레아 대사관에서 국기를 게양하는 아흐메드 총리와 아프웨르키 대통령 ⓒ연합

평화읽기

20년 분쟁의 종지부 찍은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2018년 7월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흐메드(Abiy Ahmed) 총리는 이십 년 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하던 에리트레아를 전격 방문해 이사이아스 아프웨르키(Isaias Afwerki)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주일 뒤 아프웨르키 대통령은 에티오피아를 답방했다. 9월 중순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구도시 제다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정상 간 상호방문 및 평화협정 체결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7만여 명이 희생된 전쟁을 벌인 이래 단절되었던 양국 관계를 급속히 개선시켰다. 양국 간 외교관계가 정상화됐고, 국경이 개방돼 경제적·인적 교류가 재개되었다. 이러한 평화구축 노력은 에티오피아의 아흐메드 총리에게 2019년 노벨평화상을 안겨주었다.

양국의 필요와 국제사회의 지지로 진행된 평화프로세스
  1993년 에리트레아가 무력투쟁을 통해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양국은 한동안 정치적·경제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1998년 국경 지역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쟁이 벌어졌고, 2000년 전쟁이 끝난 후 두 나라의 관계는 ‘전쟁도 없고 평화도 없는(no war, no peace)’ 상태가 되었다. 양국 간 외교관계 및 경제적·인적 교류는 단절됐다.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의 아삽(Assab)항 대신 이웃 국가인 지부티의 항구를 통해 무역을 했다. 직접적인 무력충돌은 없었지만, 양국은 소말리아 등에서 상대 국가의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며 대리전을 전개했다.

  2018년 아흐메드 총리가 취임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외교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국경 개방 등이 두 달 동안에 이루어졌다. 이와 더불어 에티오피아의 요청으로 유엔은 소말리아의 테러조직 알-샤바브(Al-Shabaab)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에리트레아에 가했던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 국경이 전면 개방되며 경제 및 인적 교류도 증가했다.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평화프로세스는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추진됐다. 양국 지도자들은 관계 정상화를 통해 상대방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을 제거하려 했다.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와 에리트레아에서 활동하는 자국 반정부 무장세력으로부터 북부 국경지대를 안정시키려 했고, 에리트레아가 붕괴될 경우 제2의 리비아, 시리아가 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에리트레아도 관계 정상화를 통해 에티오피아에서 활동하는 자국 반정부 세력의 위협을 제거하려 했다.

  티그레이(Tigray)족의 영향력을 약화하기 위한 협력의 필요성도 양국 간 관계 정상화를 촉진했다. 아흐메드 총리와 아프웨르키 대통령은 30여 년간 에티오피아에서 권력을 독점하던 티그레이족 엘리트 집단을 공동의 적으로 간주했다. 오로모(Oromo)족 출신인 아흐메드 총리는 집권당(EPRDF) 내 티그레이족 세력인 티그레이인민해방전선(TPLF)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했고, 에리트레아는 TPLF 정부와 치열한 국경 전쟁을 치루며 티그레이족 엘리트 집단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최근 티그레이 지역에서 발발한 내전은 이러한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0년 말 TPLF가 연방정부의 선거 연기에 반발하여 자체적으로 지방선거를 실시했다. 이후 티그레이 지역 내 연방정부군 기지가 공격당하자 아흐메드 총리는 TPLF 소탕을 위한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편에 서서 군사 개입을 단행했다.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양국의 평화프로세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 아삽항을 이용할 경우 항구 사용료를 절약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에리트레아와의 교역 확대는 자국 산업 발전과 고용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 전쟁 종식 이후 에리트레아 경제는 에티오피아와의 경제교류 중단, 고립주의적정책 등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맞았기 때문에,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이를 타개하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미국의 중재 노력도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평화프로세스 추진에 크게 기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는 두 나라의 관계 정상화를 지원하여 지리적으로 인접한 에리트레아의 붕괴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란과 카타르의 아프리카 진출을 견제하고자 했다. 미국은 에리트레아를 대테러 전쟁의 일원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즉, 에리트레아를 끌어들여 중동으로 통하는 항만을 확보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한 것이다. 더불어 미국은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관계 정상화를 지원하며 동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했다.

완전한 평화를 위해 국경분쟁 해결해야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평화프로세스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경분쟁 해결이 필수적이다. 전쟁 직후 설치된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국경위원회(EEBC)는 2002년 국경선을 획정하면서 분쟁의 진원지인 바드메 마을을 에리트레아에 귀속시켰다. 평화구축으로 발생하는 안보적·경제적 이득이 상당한 만큼 에티오피아는 국내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정을 이행할 것이다. 특히 국경선 결정에 반발하던 TPLF 세력의 축출과 에리트레아의 군사개입은 아흐메드 총리의 국경분쟁 해결 노력을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설사 국경분쟁 해결이 더디게 진행된다 할지라도 양국이 2018년 이전의 ‘전쟁도 없고, 평화도 없는’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낮다. 평화구축은 경제개발 촉진, 인접국과의 갈등 해소로 인한 안보위협 제거, 사회통합 등의 이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미국의 개입과 감시도 이전 상태로의 회귀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평화프로세스가 에리트레아의 독재체제 변화를 유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에티오피아와의 교류가 증가하고 걸프 국가들이 원조를 지속할 경우 에리트레아는 경제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겠지만, 아프웨르키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대신에 경제발전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에티오피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서방 국가들은 난민, 안보 등 영역에서의 협력을 위해 에리트레아의 인권 문제에 침묵할 가능성이 높다.

김동석 국립외교원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