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62021.06

*사진 필자제공

예술로 평화

PLZ 페스티벌,
음악으로 평화를!



  DMZ를 평화와 생명의 땅, 즉 Peace and Life Zone(PLZ)으로 바라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PLZ 페스티벌은 2019년부터 강원도의 접경지역 5개 군(고성, 인제, 양구, 화천, 철원)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2000년 평양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피아노 협연을 하고 돌아온 후 나는 아름다운 무대 위의 이상을 냉정하고 차가운 정치적 상황을 넘어 구현하고 싶었다. 18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2018년, 양구 펀치볼 국립 DMZ 자생식물원에서 PLZ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PLZ 페스티벌 유튜브 채널

불편 감수하고서라도 전하고 싶었던 가치
  20여 년 전 일본 히로시마에 연주를 하러 갔다가 전쟁박물관을 방문했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가 격렬하게 올라와 나는 통곡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후 오랫동안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일본과의 역사적 악연, 가해자와 피해자… 이런 것을 떠나 태초부터 역사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행했던 모든 잔인한 행위에 대한 분노와 슬픔, 고통을 느꼈던 것 같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DMZ가 상징하는 고통의 역사를 뒤로하고 미래에는 생명과 평화를 바라보자는 염원을 담아 PLZ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이는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도 맥을 같이 한다. 단순히 우리나라 DMZ 안에서의 페스티벌에 그치지 않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 이 지구상에 생명과 평화를 전파하자는 염원을 페스티벌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클래식 분야에서 훌륭한 연주는 좋은 음향과 조건을 필요로 한다. 예민한 악기들이 최선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적당한 습도가 필요하고, 햇빛에 직접 노출되지 않아야 하며 연주자는 최대한의 배려를 받아야 하는 등이다. 그러나 PLZ 페스티벌은 연주자를 위한 화장실이나 대기실 마련조차 어려웠고, 직사광선이나 우천으로 난감한 상황도 있었다. 어려운 자연적 조건도 고려해야 했다. 많은 사람이 수장되었던 철원의 수도국지에선 경사로 인해 피아노를 움직이면서 부상이 생겼고, 겨울의 명파해변과 화진포 바닷가는 너무 추워서 투명 에어돔을 실험적으로 설치해 보기도 했다. 고성의 건봉사, 인제의 백담사에서는 사찰 측의 허락을 받기가 어려웠고, 인제 비밀의 정원이나 철원 DMZ 생태공원은 청중 모두가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방문하는 청중들이 총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기획과 진행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청중들이 평소 들어갈 수 없었던 지역에서 음악회를 관람하는 특별한 기회를 만들어 냈다.

음악으로 연결되는 존재의 근원
  클래식 음악은 평소 관심이 있는 청중들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나는 접경지역의 주민이 즐길 수 없는 페스티벌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청중 모두에게 풍요로운 경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해하면서도 페스티벌의 의미를 담아내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많은 고민 끝에 자연을 상기시키는 모차르트의 음악, 우리나라의 자연과 어울리는 아리랑 등의 민요, 러시아의 대자연이 내재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가혹한 운명과 싸워야 했던 베토벤의 후기 작품 등 PLZ의 의미와 부합하는 곡들을 선곡했다. 그리고 되도록 연주자와 사전교감을 통해 이 의미를 이해하고 연주에 임해달라고 부탁했다. 인제군의 DMZ 생명평화동산에서는 마을 할머니들이 낮에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 음악회에 참여했다. 붉은 태양에 물들어가는 구름, 하늘과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와 함께 듣는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의 음악은 클래식이라는 장르나 음악 페스티벌이라는 행사를 넘어, 누구에게나 자연으로 인해 존재의 근원과 연결되는 경험을 선사했다.


  그런가 하면 작년 7월 금강산 건봉사에서 진행된 음악회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왔었는데도 60여 명의 주한 대사관 외교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DMZ를 방문하면서 안보관광이 아닌 클래식 음악회에 참석하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한다. 비를 맞으며 감상했던 편안하지 않은 현장이었지만 모두 PLZ의 의미를 되새기며 페스티벌을 성원해 주었다.

  2019년 본격적으로 페스티벌을 시작하면서 이리나 보코바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함께 페스티벌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음악과 세계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던 양구와 인제의 학교들을 방문했었다. 이 자리에서 보코바 여사는 PLZ가 추구하는 음악을 통한 평화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명예조직위원장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스위스, 탄자니아, 독일, 미국, 프랑스, 미얀마의 음악가와 청소년들도 참여했는데, 앞으로 PLZ의 철학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데 이분의 역할이 더 기대된다.

  PLZ 페스티벌이 2018년 이니셔티브를 시작한 지 3년째를 맞았다. 그동안 세계적인 음악가들도, 접경지역의 청소년도, 군인도 참여하는 페스티벌로서의 특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언젠가는 휴전선 북쪽의 음악가들도 참여하기를, 그리고 PLZ 페스티벌이 참여자들에게 자연과 존재의 완벽함을 문득 깨닫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삶의 여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위로받고자 하는 이들이 참여하는 페스티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대규모 대면행사가 어려웠다. 작년의 공연은 유튜브 채널과 TV 케이블 채널(아르떼, 클래시카, 올페오)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임미정 피아니스트, 한세대학교 교수,
PLZ 페스티벌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