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62021.06

연간기획

미래가 온다 ❻

전국민
고용보험 가능할까?



코로나19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이로 인해 시작된 전국민 고용보험 논의를 살펴보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본 기획은 코로나19가 가져온 한국사회의 과제를 미래비전 차원에서 짚어보며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협력하여 진행됩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흔들었고 사회보험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인은 갑자기 일자리를 상실하여 소득이 사라지는 위험에 대처하기 어렵다. 이런 위험에 사회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실업보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용보험이라고 부르는데, 실직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실직자가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4월 21일 서울 노원구 북부고용센터에서 방문객들이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

코로나19는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계층에 집중적으로 타격을 입혔다. 사진은 지난 3월 28일 문을 닫은 대학가 인근 상점들 ⓒ연합

코로나19로 제기된 전국민 고용보험 논의
  코로나19는 우리나라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었다. 정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재택근무, 일시휴직, 고용유지지원금 제도 등으로 일자리를 보호받았고 소득 중단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영세사업체 노동자, 그리고 영세자영업자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이 중단되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정부는 이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소득 상실에 대처하기 위해 긴급재난지원금과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편성하여 집행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르며 일상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긴급예산의 편성 및 지원을 넘어서는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 전국민 고용보험이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경험한 뒤 지난 20여 년간 실직 위험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추진하였다. 1995년 고용보험이 도입된 후 지원 범위가 확장되고, 근로장려세제와 사회보험료지원사업이 도입됐으며, 2020년에는 국민취업지원제도가 도입되는 등 정책적 노력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드러났듯이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들의 경우 실직에 따른 소득 상실 위험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2015년 68.7%에서 2020년 72.6%로 꾸준하게 증가했지만, 10인 미만 사업장의 가입률은 53.3%에 불과하고 전체 취업자 대비 가입자 비율도 5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법적으로 고용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취업자가 자영업자를 포함하여 860만 명에 달하고, 법적 적용대상임에도 실제로는 가입되어 있지 않은 임금노동자가 300만 명이 넘는다.

* 주: 공무원 등은 공무원, 교원, 별정우체국 직원. 고용보험 적용제외는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면서 5인 미만 농림어업, 가사서비스업,
65세 이상, 주당 평소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단시간 근로자(3개월 이상 근속한 근로자 제외), 특수형태 근로에 종사하는 근로자임.
*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2020년 8월 부가조사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우리나라 고용보험이 새로운 고용형태 등장에 따른 고용형태의 다양화, 빈번한 직장 이동의 증가 등 노동시장의 변화에 한발 늦게 대응해 왔고, 고용보험 자체가 고용관계(임금노동관계)와 기여(보험료)에 기초하는 내재적 특성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고용지위, 즉 임금노동자 여부(종속성)와 사업주의 전속성 여부에 기초하는 기존의 고용보험 모델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전국민 고용보험, 노동시장의 구조와 환경 고려해야
  전국민 고용보험은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고용보험’을 의미한다. 연령대와 계층에 상관없이 근로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형태의 위험으로 일자리를 상실할 경우 다시 노동시장에서 원활한 경제활동을 할 때까지 표준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위험을 분산·공유하자는 이념과 목적이 구현되어야 한다. 즉, 우리나라의 고용보험도 보편주의 원칙이 현실에 관철되는 사회안전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모든 취업자에 대한 보편적 고용안전망 제공’이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현재 약 1,400만 명 수준인 고용보험 가입자를 2022년에 1,700만 명, 2025년에 2,100만 명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속히 가입하도록 하고,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해 나가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자영업자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실업급여 수급자가 역대 최대 규모로 증가했다. 사진은 지난 4월 12일 서울 송파구 일자리허브센터에서 구인 게시판을 보는 시민 ⓒ연합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하겠다는 원칙에는 대다수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제도 설계에서는 계층 간 형평과 연대의 문제, 재정의 지속가능성 문제, 행정체계 구축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이를 고려하면 단계적 추진방식을 비판할 수만은 없다.

  다만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기존의 고용지위 기반 모델을 유지한 채로 고용보험의 적용범위와 보호 수준을 확장하는 방식은 변화하는 노동시장 구조와 환경에 뒤처지는 문제를 가진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구조와 특성, 그리고 변화 전망에 맞추어 기존 고용보험을 개편하기 위한 원칙과 방향을 설정하고 더 보편적인 사회적 보호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실적 장애를 어떻게 넘어설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고용지위에 기반한 고용보험은 변화하는 노동시장 환경을 반영하여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노동에서 개인화된 요소가 증가된 고용형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개인의 소득을 기준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소득 상실에 따라 급여를 받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주를 특정하는 전속성 기준을 완화하고, 임금노동이라는 종속성 기준을 강제하지 않아야 하며, 소득 파악 체계를 구축해 소득 산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소득 기반 사회보험으로의 전환과
적용 범위의 확대와 같이 사회보험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
한편으로 고용보험 적용이 어려울
수 있는 장기실업자나 취약 청년
등에 대해서는 보험료가 아니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조세 기반의
프로그램들을 적절하게 결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전국민 고용보험을 구축하는 데 가장 어려운 과제는 자영업자의 당연가입 문제이다. 자영업자는 사업주 기여분까지 납부해야하기 때문에 보험료 부담이 임금근로자의 두 배에 달한다. 또 자영업자의 소득을 아직 완전하게 파악하기 어려우며, 소득의 기준도 매우 다양하다. 외국의 경우도 자영업자의 완전한 의무가입-강제가입을 도입한 사례는 많지 않다. 자영업자까지 포함하는 보편적 고용보험을 도입한 덴마크도 완전한 강제가입 방식보다는 가입 인센티브를 강하게 제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당연가입을 추진할 경우 자영업자들은 보험료를 세금으로 보고 정치적으로 강하게 저항할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자영업자의 당연가입을 단기간에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현재 자영업자는 임의가입 형태로 고용보험 대상에 포함되어 있고 OECD에서도 자영업자의 의무가입을 권고하고 있다. 소득 파악 역량을 확충하면서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 등을 통해 가입 범위를 넓혀가고, 피용자와 자영업자 간의 기여와 수급 조건을 공평하게 만들어 나간다면, 전국민 고용보험 구축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23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전국민 고용보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전국민 고용보험을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연합

고용안전망 갖추기 위한 사회적 합의 수준 높여야
  이렇게 소득 기반 사회보험으로의 전환과 적용 범위의 확대 등으로 사회보험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 한편으로 고용보험 적용이 어려울 수 있는 장기실업자나 취약 청년 등에 대해서는 보험료가 아니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조세 기반의 프로그램들을 적절하게 결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세(일반예산) 기반의 비기여 제도에는 기본소득부터 자산조사 기반의 실업부조까지 다양한 옵션이 있을 수 있다. 올해 도입한 실업부조의 한 형태인 국민취업제도가 제도로서 안착될 필요가 있다.

  전국민 고용보험 즉, 보편적 고용안전망으로 가는 데에는 극복해야 할 쟁점과 과제들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합의와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다.

전병유 한신대학교
사회혁신경영대학원 교수